맨발걷기가 가져온 기적같은 변화, 일상을 바꾸다
맨발걷기가 가져온 기적같은 변화, 일상을 바꾸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1.10.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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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지구수다] 맨발걷기 270일째

◇ 사라진 엄마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서

코로나 감염병으로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났고 학교도,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삼시 세끼를 해 먹는 게 힘들었다. ‘엄마 배고파’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집에서 하루종일 아이들과 있다 보니 내 시간과 공간이 사라졌다.

자기 방이 좁아서 갑갑하다며 거실 식탁에서 온라인수업을 하는 큰 아이 때문에 오전에는 부엌일도 눈치가 보였다. 안방에서 문을 닫고 수업을 듣는 둘째는 사춘기를 제대로 맞았다. 말과 행동이 거칠어져서 나는 매일 심장이 쪼그라들고 상처를 받았다. 목소리가 유독 큰 6살 막내가 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면 시끄럽다고 큰형한테 매번 혼이 난다. 급기야 장난감을 뺐기고 울고불고 난리다.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다.  남편과 아이들 문제를 얘기 하다 보면 결국 부부싸움이 났고, 다섯 식구가 함께 있는 주말이 오는 게 두려웠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결국 몸이 탈이 났다.

결혼 전부터 오른쪽 발가락 습진이 생겨 여름마다 신경쓰였는데 작년 5월부터 부쩍 심해졌다. 발가락 사이에 진물과 피가 나면서 신발을 신고 걷는 게 고통이었다. 발이 바닥에 닿이면 아파서 집에서도 두 발에 힘을 주고 서 있지 못했다. 발을 절며 집안일을 했고,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삶이 불행해졌다. 병원약도 먹고 스테로이드 연고도 발랐지만 그것 마저 듣지 않아 상처가 점점 퍼져나갔다. 맨발 걷기가 염증에 좋다고 해서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하고 올해 2월 2일부터 맨발걷기를 시작했다.

2월 2일은 결혼기념일, 내 생일보다 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세 아이가 모두 다 학교와 어린이집에 간 역사적인 날. 그날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10시경 매일 바다를 걸었다.

맨발걷기 19일째 되는 날 아파트에 이중주차된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고 일찍 일어난 김에 새벽 맨발을 갔다. 바다 가까이 온통 붉은 해가 떠오르는 걸 본 순간 가슴이 뜨겁고 눈물이 났다. 결혼 초 동해안 여행에서 보고 15년 만에 처음 본 일출이다. 매일 뜨는 해가 똑같지 뭐가 다를까 생각했는데 그날 타오르던 해는 허한 마음을 엄마의 손길처럼 따뜻하게 데워줬다. 젖은 모래에 발을 묻고 뜨거운 해가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파도소리, 갈매기소리만 들렸다. 한참 만에 눈을 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껏 봐왔던 바다가 아니다. 매일의 해가 다르듯 매일의 나도 달라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백사장의 나만의 시간과 공간,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일산해수욕장을 아침마다 맨발로 걸은지 100일째날 인증샷, 지금은 270일째, 1년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노미정
일산해수욕장을 아침마다 맨발로 걸은지 100일째날 인증샷, 지금은 270일째, 1년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노미정

◇ 자연 이야기가 펼쳐지는 바닷가를 걷다

맨발걷기 20일째부터 신통방통한 일이 일어났다. 밤 10시만 되면 잠이 쏟아졌고 알람을 맞춰놓치도 않았는데 매일 6시 30분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5∼6시간만 자도 몸이 개운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던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됐다. 매일 한 시간씩 투자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났다.

그리고 내 발의 진물이 멈췄다. 갈라지고 쓰라렸던 부위가 치유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명현현상이 있기는 했지만 발이 낫는 신기한 과정, 매일 바다를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맨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바다에 가서 해가 뜨기 전까지 30분씩 차에서 책도 읽었다. 좁은 차 안이지만 온전히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누가 찍어도 멋질 수밖에 없는 일출 사진을 지인들 단톡방에 올렸다. 새벽에 일출 보러 한번 나가볼까 하고 왔던 사람들이 아침 바다의 매력에 빠졌다. 혼자 걸을 때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걸으며 눈에 밟히고 발에도 밟히는 쓰레기들을 하나둘 줍다 보니 본격적으로 바다 쓰레기 문제도 고민하게 됐다.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아침 6시. 맨발일기〉

일산해수욕장의 눈부신 아침. 하늘의 솜털 구름, 갈매기, 까마귀, 비둘기가 함께 노니는 바닷가, 그리고 우리 작은도서관 맨발동무들,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맨발로 걷다.

“야, 여기 여기, 작가님 나타나셨어. 오늘은 문어대령이요.”

“문어다리의 돌기까지 어쩜, 디테일이 살아있네. 정말 신기하다.”

“어제 만든 고래도 보수공사가 완료됐나봐. 훨씬 부드럽게 변했어.이 정도면 관찰력이 정말 예리하신분인가보다."

며칠 전에 ‘변기에 똥 누고 도망가신 분’(우리끼리 붙인 작품 이름)도 같은 사람이 확실하다.

제일 먼저 발견했던 게 좌변기였다. 흘리고 간 흔적, 물 내리는 버튼까지.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광경에 한참을 웃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제는 고래발견, 유연한 곡선과 꼬리, 플라스틱 두껑을 붙인 눈, 간밤에 작가님이 다녀가셨나 보다. 그리고 오늘은 뭐가 있을까? 기대하며 걷는데 문어가 떡하니 나타났다. 맨발로 걸으며 만난 바다 위 모래작품 전시회. 누군지 모를 모래작품 작가님 덕에 바다를 걷는 즐거움이 또 하나 늘었다. 파도에 실려 오듯 매일 아침 바다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매일 아침 바닷가에 나타난 모래조각 작품들, 변기, 고래, 문어. 바다를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되다. ⓒ노미정
매일 아침 바닷가에 나타난 모래조각 작품들, 변기, 고래, 문어. 바다를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되다. ⓒ노미정

◇ 맨발 걷기 하며 재활용 쓰레기 줍는 중이에요

매일 아침 6시에서 7시 30분까지, 일산해수욕장을 맨발로 걸으며 쓰레기를 주운지 8개월. 처음엔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 걷다 보니 쓰레기가 눈에 보이고 발에 밟혀서 하나씩 줍게 된 게 지금까지 왔다. 벗어놓은 슬리퍼를 누가 가져가서 정말 맨발로 집에 간 적도 있고, 바다에서 분실된 지갑을 찾아 들고 경찰서도 여러 번 갔다. 연이틀 바다에서 임신 진단 키트를 발견하고 (하루는 임신, 하루는 임신 아님) 맘이 안 좋았던 기억. 애써 주워놓은 재활용에서 캔과 병만 쏙 사라진 황당한 경험. 쓰레기를 주워서 바다 앞 수돗가에서 세척을 하다 보니 물 사용문제로 청소하시는 분들과 여러 번 부딪힌 일도 있다. 우리는 좋은 맘으로 한 활동에 상처받은 일, 그걸 어떻게 잘 해결해 나갈지도 우리 몫이었다. 더불어숲 작은도서관 '맨발덕분에' 동아리가 우리 마을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던 이야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서 가능했던 지구수다를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맨발걷기 동아리 '맨발덕분에' 해뜨는 아침을 맞으며 맨발로 바다를 걷고 쓰레기를 줍는다. ⓒ노미정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맨발걷기 동아리 '맨발덕분에' 해뜨는 아침을 맞으며 맨발로 바다를 걷고 쓰레기를 줍는다. ⓒ노미정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고등학생, 중학생, 늦둥이 여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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