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무상교육비 지원정책, 사교육 부담 경감 대책인가, 공교육의 학원화인가
유아 무상교육비 지원정책, 사교육 부담 경감 대책인가, 공교육의 학원화인가
  • 기고=전인수
  • 승인 2026.08.0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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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를 위한 평등한 출발선] 6. 교육의 필요보다 예산 집행이 교육과정을 움직이고 있다

베이비뉴스와 영유아를 위한 전국희망연대는 '모든 아이를 위한 평등한 출발선' 영유아정책 전환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영유아정책이 전환의 기점에 선 지금, 유보통합 3법을 비롯해 교사 처우, 장애영유아 교육권, 이음교육 등 교육 방향과 공적 지원체계 전환 등 핵심 정책 과제를 차례로 짚어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모든 아이가 출생과 가정환경, 장애 여부, 지역과 기관 유형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정책 전환을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말

정부는 유보통합 시범사업의 하나로 만 4·5세 유아를 대상으로 무상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유치원에 재원중인 유아운 1인당 월 11만 원, 어린이집의 유아는 월 7만 원을 지원하며, 이 예산은 특별활동비 등 부모가 부담하던 교육비를 줄이는 데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조기 사교육을 완화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한다.

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책의 취지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출생 시대에 국가가 영유아교육에 대한 책임을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선한 의도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느냐가 아니라, 그 예산이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느냐이다.

유보통합의 핵심은 프로그램 지원이 아니라 모든 영유아에게 동등한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임이다. ⓒ공립제주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
유보통합의 핵심은 프로그램 지원이 아니라 모든 영유아에게 동등한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임이다. ⓒ공립제주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

지금의 무상교육비 지원 방식은 그 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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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정책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공교육 안으로 사교육적 요소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는가.

현재 무상교육비는 부모가 부담하던 특별활동비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더욱이 사용하지 못한 예산은 국고로 환수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지보다 예산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가 된다. 그 결과 그동안 국가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 충실하게 운영되던 기관들까지도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새로운 특별활동과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의 필요보다 예산 집행이 교육과정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정책 설계라고 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유보통합이 지향해야 할 공교육의 방향과도 충돌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교육은 단순히 부모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교육에 대한 불안이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공교육만으로 충분할까'라는 불안이 사교육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사교육비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특별활동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을 수 있도록 공교육 자체의 질을 높이고 교육과정에 대한 부모의 이해를 높여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과 충분히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모든 아이가 지역과 기관에 관계없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공교육 강화이며 사교육비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현재의 무상교육비 사업은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기관들은 지원금을 활용하기 위해 더 많은 특별활동을 계획하게 되고, 부모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을 좋은 기관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공교육기관 사이에서도 프로그램 경쟁이 시작된다. 정부는 사교육를 줄이기 위해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사교육적 요소가 공교육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아교육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놀이를 중심으로 아이의 경험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을 국가 수준에서 제시하였다. 유아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경험한다고 더 잘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교사와의 관계, 충분한 놀이 시간, 또래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자신의 속도에 맞게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다.

좋은 유아교육은 활동의 개수가 많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교사가 아이들이 놀이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질 높은 상호작용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국가가 지원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특별활동비가 아니라 교사가 아이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교육과정 실행을 위해 준비하고 평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교사가 아이들마다 한명 한명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개별적 특성에 맞게 잘 배움이 일어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시간과 인력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놀이환경이어야 한다.

행사와 체험의 확대가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어야 한다.

무상교육비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의 공교육 철학을 보여주는 투자다. ⓒ공립제주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
무상교육비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의 공교육 철학을 보여주는 투자다. ⓒ공립제주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

유보통합은 단순히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하나의 행정체계로 묶는 정책이 아니다. 유보통합의 본질은 어느 지역에 살든, 어느 기관을 다니든 모든 영유아가 동일한 수준의 질 높은 공교육을 받을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재정 지원 역시 그 철학을 따라야 한다.

특정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 교육과정이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교육환경 자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을 개선하고, 놀이 환경을 확충하며,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사 전문성 향상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유보통합이 지향해야 할 재정 지원이다.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육의 질이다.

지역과 기관에 따라 교육의 수준이 달라지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특별활동비만 지원하는 것은 교육격차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프로그램 경쟁을 심화시키고 공교육의 정체성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유보통합은 교육의 출발선을 평등하게 만드는 국가 책임의 선언이어야 한다. 출발선이 평등하다는 것은 어느 어린이집, 어느 유치원에 다니더라도 아이들이 질 높은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가 프로그램의 개수나 특별활동의 화려함을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공교육 자체를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유보통합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무상교육비는 단순한 복지예산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공교육을 만들 것인가를 보여주는 교육철학의 표현이다.

이제는 지원의 규모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원의 방향을 다시 물어야 한다. 공교육의 이름으로 사교육을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공교육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도록 만드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불안을 줄이고, 사교육 의존을 낮추며, 모든 아이에게 평등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유보통합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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