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편집자 말

아이들은 마음껏 놀아야 한다.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을까. AI 시대가 성큼 다가온 현재, 그리고 유보통합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현재,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보육과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 아이들의 놀 권리, 국내법과 국제법에서 보장하는 권리
아이에게도 놀 권리가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적 주장만은 아니다. 198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1조는 아동이 휴식과 여가를 누리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협약의 당사국으로 1991년 12월 20일부터 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다.
국내법에서도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서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규정한 아동의 권리와 복지 증진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동의 권리를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다.
아이에게 놀이는 선택적으로 허락되는 시간이 아니라,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놀이를 단순히 ‘노는 것’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곧 배움이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친구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갈등을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무엇인가를 직접 만지고 움직이고 시도하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해보고,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점점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탐색하며 놀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놀이의 기회에도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유니세프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자료는 영유아의 놀이 경험이 가정의 경제적 여건, 양육자의 교육 수준, 거주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충분한 시간과 공간, 놀이 자료와 함께 놀아줄 사람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에는 놀이 경험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놀이의 격차는 곧 경험의 격차가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영유아기에 충분한 신체활동과 적극적인 놀이가 필요하며, 장시간의 좌식 활동과 화면 시청을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영유아기는 신체적·인지적 발달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시기인 만큼, 아이가 직접 움직이고 탐색하고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 AI 시대, 아이들에게 놀이는 더 중요한 가치다
이제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변화가 하나 더 있다.
AI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이미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고, 수많은 지식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단순히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지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무엇을 궁금해할 것인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새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와 체험, 경험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이가 직접 흙을 만지고, 나뭇잎을 관찰하고, 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몸을 움직이며 세상을 경험하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놀이 속에서 생기는 우연한 발견과 예상하지 못한 문제,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감정과 협력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만이 아니다.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하다.
◇ 유보통합의 논의 중심에는 항상 아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영유아 교육과 보육 정책의 개선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래서 아이의 삶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질문은 ‘유보통합’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보통합 논의가 시작된 이후 교사 자격과 처우, 기관 운영, 재정, 행정체계 등 수많은 쟁점이 다뤄지고 있다. 하나같이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
유보통합이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작 아이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묻는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보통합의 목적은 행정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특정 기관의 이해관계나 유불리를 조정하는 데 머물러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어느 지역에 살든, 어느 기관을 이용하든, 교육과 돌봄의 질에서 불합리한 격차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 충분히 놀고, 배우고, 경험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유보통합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돼야 할 변화다.
그런데, 현재의 유보통합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보건복지부 영유아 보육 업무는 지난 2024년 6월 27일부로 교육부 이관이 공식 완료됐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쳤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 지방에서는 어린이집 관련 업무와 교육청의 유치원 업무가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지 않았다.
중앙과 지방의 완전한 행정체계 통합을 위해서, 그리고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서, 현장에서 ‘유보통합 3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감 있게 임하지 않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시간은 흘러간다. 아이들은 매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놀고, 배우고, 성장한다. 행정체계가 정리될 때까지 아이의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물론 유보통합의 논의에서, 중앙과 지방의 행정체계 통합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시작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에, 자꾸 언급하는 것일 뿐이다.
기관의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인지, 교사 자격은 어떻게 할 것인지, 처우는 어떻게 맞출 것인지,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기관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질문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의 질문이 있어야 한다.

◇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놀 권리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의 삶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아이에게 더 많은 놀이 시간이 생겼는가.
아이들이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는가.
어느 지역에 살든 질 높은 교육과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됐는가.
아이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탐색하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는가.
유보통합은 바로 이 질문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중심에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
교사도 중요하고, 기관도 중요하고, 행정도 중요하고, 예산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이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는 순간 유보통합의 의미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AI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더 빨리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질문할 수 있는 호기심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며, 직접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놀이가 있다.
아이는 놀면서 세상을 만난다. 놀면서 질문한다. 놀면서 관계를 배운다. 놀면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다. 놀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어간다.
아이에게 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AI 시대, 그리고 유보통합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보육과 교육을 고민한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많이 가르치기 전에 더 많이 경험하게 하고, 정답을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시키기 전에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어야 한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