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의 시간은 어른의 시계로 잴 수 없다... 획일적 발달 시간표를 넘어 ‘기다림의 교육’으로
영유아의 시간은 어른의 시계로 잴 수 없다... 획일적 발달 시간표를 넘어 ‘기다림의 교육’으로
  • 기고=천은아
  • 승인 2026.08.2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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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 20. 천은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책임연구원

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편집자 말

오랜 시간 어른들은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고 어른이 정해놓은 발달 시간표에 아이들을 끼워 맞춰 왔다. 전통적인 아동발달관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발달을 지향한다. ⓒ베이비뉴스

스웨덴의 사상가 엘런 케이(Ellen K. S. Key)는 자신의 저서 「어린이의 세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연이 스스로 돕도록 하고 단지 주위 상황이 자연의 활동을 지원하도록 살펴보는 일, 그것이 교육이다. 아동의 고유한 본성을 억압하고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는 것은 교육학적 범죄다.”

20세기 쓰여진 교육학의 고전이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영유아의 고유한 본성이 자라날 자리에 무엇을 채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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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시간표에 끼워 맞춰진 영유아

오랜 시간 어른들은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고 어른이 정해놓은 발달 시간표에 아이들을 끼워 맞춰 왔다. 전통적인 아동발달관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발달을 지향한다.

영유아 사교육시장은 이 보편적 기준을 파고들었다. 시장은 발달 시간표를 상품으로 만들어 부모들에게 쉴 새 없이 내민다. 이 시기에는 이만큼 도달해야 한다는 말은 사교육시장의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전통적 발달심리학의 일부만을 차용한 사교육 마케팅은 끊임없이 부모의 불안을 자극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그렇게 영유아 고유의 본질이 피어날 공간은 지워지고 그 자리를 성인의 욕망과 사교육 논리가 채운다.

유아교육에서는 아동발달을 어른이 정한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을 경계한다. 유아는 각자의 고유한 방식과 속도로 자신만의 발달을 성취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달은 강요될 수도, 틀을 지을 수 없다. 외부의 잣대로 억지로 학습을 욱여넣을 때 아이의 내면에서 스스로 싹터야할 온전한 발달은 그 순간 멈추고 만다.

◇ 영유아의 배움은 ‘놀이’ 그 자체다

국가 교육 철학 역시 이러한 점을 받아들여 2019년 유아교육과정이 개정을 통해 연령별 구분을 없앴다. 누리과정 해설서에서는 그 이유를 “유아가 경험해야 할 내용을 연령에 따라 인위적으로 나누기 어렵고 연령별 구분이 개별 유아의 배움의 특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누리과정에 담긴 것은 세부내용은 교사가 가르쳐야할 지식도 유아가 도달해야 할 성취기준도 아닌 경험할 내용이다. 현행 누리과정에서는 한글을 읽고 쓰는 것, 덧셈과 뺄셈과 같은 인지적 내용이 없다. 유아기에는 놀이가 곧 배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아는 놀이 속에서 호기심을 품고 탐구하며, 타인과 갈등을 조율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경험한다.

진정한 놀이에는 목적이 없다. 어제 했던 블록놀이를 오늘 다시 꺼내어 논다고 해서 뒤처지거나 진도를 놓치는 것이 아니다. 놀이는 무언가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아닌 그 자체로 완결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 사교육 시장의 ‘놀이식 교육’은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반면 사교육 시장이 주도하는 ‘놀이식 교육’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놀이식 한글, 놀이식 영어, 놀이로 배우는 수학 등 도달해야 할 지점을 이미 정해두고 놀이를 그곳까지 향하는 통로로 이용한다.

사교육 시장의 ‘놀이식 교육’은 이렇게 배워야할 내용을 먼저 정해두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놀이를 덧입힌다. 겉보기에는 유아기 발달을 고려한 듯하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어른이 설계한 인지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유아교육에서는 배움 그 자체인 놀이가 사교육시장에서는 배움을 나르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놀이식 교육’이 힘을 얻는 이유는 부모를 교묘히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놀면서 배운다니 억지로 시키는 주입식 교육보다 낫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놀이는 그 어떤 목적이나 계획, 강제성도 없다. 짜여진 시간표 안에서 교사가 주도하는 활동은 진정한 놀이의 본질과 어긋난다.

◇ 존재를 긍정하는 ‘기다림의 교육’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영유아들의 놀이마저 어른의 시간표에 가둬버린 그 밑바탕에는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어른의 불안과 조급함이 깔려있다.

그러나 영유아의 시간은 어른의 시계로 측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출발선이 아니라 존재론적 관점에서 한 아이의 고유한 우주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일이다.

그 인정은 기다림으로 나타난다. 영유아가 자신의 속도대로 세상을 탐색하도록 조용히 지켜보며 지원하는 ‘기다림’을 회복해야 한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엘렌 케이가 말하듯 자연이 스스로 돕도록 하되 주위 상황이 그 활동을 살피고 지원하는 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적기(適期)교육은 바로 그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영유아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은 어른이 만든 테스트를 통과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흙과 돌멩이를 손에 쥐고 부수고 쌓으며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거듭할 때 빛이 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고유한 본성이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줄 용기를 갖추고 있는가.

그러나 이 기다림을 부모 개인의 용기와 결단에만 떠넘길 수 없다.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홀로 버티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다.

그렇기에 더욱 단단한 공적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교육의 굴레를 벗는 것은 제도의 개선에 더해 아이의 고유성을 온전히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동반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영유아가 가진 각자의 삶의 궤적을 묵묵히 응원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교육의 진정한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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