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나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딱히 크게 실천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작은 걱정 하나를 품고 살고 있는 정도다. 기후위기에 대한 노래도 두 곡 발표한 적이 있고, 그와 관련된 정보도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마음은 서늘해지고, 조바심 또한 든다.
아들을 기르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내가 갑자기 기후 위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들을 만나게 된 일이 그에 대한 나의 생각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혼자 살던 시절에 내가 우려하던 것은 다음 세기나 다다음 세기에 다가올지 모를 인류의 고난이나 종말 같은 게 아니었다. 당장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일어날지 모를 식량난이나 지금보다 극심할 폭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내가 대충 여든에서 아흔 살 정도 될 때까지 지구가 잘 버텨주길 바란 것이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미래, 그러니까 내게 만 2세의 아들이 생기고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 된 오늘이 도래해버린 것이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이 지구를 후손에게 깨끗하게 물려줘야 한다느니, 이 지구는 미래 세대로부터 빌려다 쓰는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내게서 정말로 지구를 물려받을 존재가 태어나고 나니 이것저것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제발 이 기후변화가 앞으로 오십년만 인류를 위협하지 않아주길 바라던 마음이 백년짜리로 늘어나버린 것이다.

백년이면 충분할까? 아들도 나중에 부모가 된다면 분명 나와 같은 걱정을 할 것이 아닌가. 아들이 다음 세대를 걱정하느라 마음 쓸 걸 생각하면 또 속이 상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백오십 년?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자신은 안전한 환경에서 천수를 누렸지만 또 다음 세대를 걱정할 나의 손자와, 그런 손자 때문에 속이 상할 나의 아들은? 그 또한 내게도 슬픈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이건 끝이 없다. 차라리 어느 시점에 대가 끊어져야 마음이 편할 지경인데, 그렇게 되면 내 아들이나 그의 자식, 또 그의 자식 중에 누군가가 내가 아들과 함께 하면서 느끼는 이 충만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걱정은 끝이 없다. 사백년 뒤에 있을 외계인의 침공을 대비하느라 분주한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 나오는 인류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후에 대한 여러 담론이 요즘의 내게는 더욱 가깝게 와 닿곤 한다. 누군가 위기를 부추기는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접하면 이전보다 크게 분개하고, 지구 어딘가에서 나타난 심각한 징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훨씬 크게 두려워한다. 좀 더 원인 규명이 필요하겠지만 네팔에서 일어난 홍수가 빙하가 녹아서 쏟아지는 바람에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접했다. 당장 일어난 비극도 당연히 슬프지만 그런 일이 지금보다 빈번해질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따금 무섭게 치솟는 농작물 가격을 보며 내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들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아들 걱정을 한다. 작년보다 더웠던 올해의 여름을 두고도 당장의 힘듦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환갑이 되었을 때 맞이할 여름은 어떨까. 올여름에도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야 하는 날이면 내리쬐는 뙤약볕에 더워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는데, 한층 더 무더울 어느 미래의 여름을 아들과 그 가족들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마치 폭탄돌리기를 하듯 이기적인 말일 수 있지만 나는 인류가 맞이하게될지도 모를 끔찍한 미래를 최대한 먼 곳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사실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들의 후손들보다야 당장 내 곁에 있는 아들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을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내 아들이나 손자보다는 최대한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떠넘기고 싶은 파렴치한 마음을 갖는다. 그동안 우리의 과학과 제도, 그리고 시민의식은 성장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지금보다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합리화까지 곁들이곤 하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야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지만 행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충분히 두렵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두려운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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