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이건 왜 그런거야?" "그건 왜 그래?" 아이는 말문이 터짐과 동시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때로는 귀찮기도,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만큼 호기심이 많다는 의미이죠. 요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나에게 멍이가 좋은지 야옹이가 좋은지 물어봐" "음, 멍이가 좋아? 야옹이가 좋아?" "응, 둘다 좋아!" 아이는 이렇게 커가나 봅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원제 Ask Me)는 미국의 유명한 아동 작가인 버나드 와버가 글을, 이수지 동화 작가가 그림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버나드는 짧고 간결하면서도 동심이 흠뻑 느껴지는 글로 인기를 누린 작가로, 이 책은 다름아닌 버나드 자신이 예전에 딸과 함께 보낸 추억을 회상하면서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버나드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그림으로 표현될 지 무척 설레어 했으나 애석하게도 완성된 작품을 미처 보지 못한채 재작년에 타계했다는군요. 대신 그의 딸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재미있고 다정한 분이었어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죠."
붉게 물든 가을의 공원,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지는 사이로 산책하는 젊은 아빠와 대여섯 살된 딸이 있습니다. 붉은 색 파스텔 톤에 온갖 색감이 더해진 주변 풍경은 마치 내가 가을 한복판에 와 있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공원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날아가는 기러기도 보고, 나비나 잠자리도 살펴보고 또 꽃 향기도 맡아봅니다. 수북이 쌓인 단풍잎을 밟는 장면을 보면 마치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의 귀에 와 닿는 듯 합니다. 두 사람은 그 위에 누워서 가을 햇살을 즐기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빠 하나, 나 하나 맛있게 먹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아빠는 말합니다. "넌 뭘 좋아하니?" 딸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합니다. "나는 개를 좋아해. 고양이도 좋아하고 거북이도 좋아해. 그리고 기러기도 좋아!" 아빠는 다시 묻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아니면 물에 떠 있는 기러기?" "둘다 좋아!"
아이는 산책하는 내내 아빠에게 "나한테 물어봐"라고 말합니다. 아빠는 귀찮아 하지 않고 아이가 시키는대로 질문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나는 말이 좋아 아냐 아냐 말을 타는 게 좋아!" "네가 말을 타봤니?" "회전 목마를 탔잖아. 기억 나지? 아빠 기억나면서" "그래 기억나네" "또또 물어봐" "또또 뭐가 좋아?" "나는 비가 좋아. 비가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내리는 게 좋아.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난 이 말이 좋아. 내가 만든 거야!"
여느 동화책과 달리, 책 속의 아이는 진짜 대여섯 살짜리 아이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나은공주의 말투와 행동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읽는 창작 동화책들은 대부분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내려다 봅니다. 아마도 동화 속 이야기를 통해 아이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가르쳐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른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은 아닐까요.
진정한 동화책은 어른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아이의 눈높이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직업인으로서 동화 작가가 아니라,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본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버나드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였을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아빠들은 자녀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 지 어려워 합니다. 사실은 정말 간단합니다. 평소 아이가 뭐라고 말하는지 늘 귀 기울여 주고 맞장구 치면서 공감해 주면 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 유치한 질문이라도 반응하고 성의껏 대답해 주는 것입니다. 평소 가족들 끼리 정겨운 대화를 많이 한 아이일수록 심리적인 안정감과 강한 애착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어휘력과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아빠가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원을 거닐며, 아이를 목마 태운 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빠와 아이는 한없이 친밀해집니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무뚝뚝한 성격 탓에 아이들에게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아빠라면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세요. 아이와의 관계는 한결 가까워질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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