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한국인… 저출생은 ‘진화’의 결과다?
‘멸종위기종’ 한국인… 저출생은 ‘진화’의 결과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5.28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진화학에서 역사학까지’ 일곱 가지 새로운 시선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김상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그동안 국가가 출산율을 목표로 제시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었으나 이번 로드맵에는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담았다. 지금까지 대책이 부처에서 내놓는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지난해 12월 7일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서는 출산율 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출산율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설명. 정부도 ‘아이 하나는 외로워요’ 수준에서 벗어나, 저출생 현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김영사, 2019년 5월)은 바로 저출생 쇼크 시대의 ‘시각 전환’을 위한 책이다. 사회·구조적 측면으로 바라보던 경향에서 탈피해, “저출산 현상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학자들이 모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조망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7쪽)했다.

인구학(조영태), 진화학(장대익), 동물학(장구), 행복심리학(서은국), 임상심리학(허지원), 빅데이터(송길영), 역사학(주경철)의 관점에서 본 ‘출산율 제로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지난해 12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주관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학계의 시각과 견해’ 토론회를 토대로 기획됐다.

◇ “경쟁 심하면 출산 미루고 자신 성장에 투자… 저출산은 적응적 현상”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는 ‘생애사 이론’을 통해 저출생 현상을 들여다봤다. 인간의 출산은 ‘성장-출산-양육’이라는 생애 단계 가운데 하나. 키워드는 ‘경쟁’과 ‘지각’이다.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출산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출산을 미루고 자신의 성장에 자원을 투자해 본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저출산은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적응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0쪽)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좀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인구학자 멜서스와 진화학자 다윈을 불러내 21세기 대한민국의 저출생 문제에 대해 가상의 대담을 나누게 한 것이다.

“경쟁이 발생하면 물리적인 밀도가 심리적인 밀도로 발전됩니다. 물리적인 밀도에 심리적인 밀도까지 높아지면 아마도 재생산은 연기되거나 포기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 초저출산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밀도와 함께 심리적인 밀도가 극도에 다다랐다는 방증일 겁니다.”(189쪽, 멜서스 가상 대담)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이고, 그게 결국 종의 진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겠어요. (…) 생물학적인 진화가 아니라 사회적인 진화지요. 과거 부모나 선배 세대들의 생존과 재생산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보이고 있을 것입니다.”(189쪽, 다윈 가상 대담)

그렇다면 장 교수가 만든 ‘가상 대담’ 속 멜서스와 다윈은 어떤 ‘대안’을 말했을까.

멜서스는 “수도권으로 집중될 필요가 없도록 지방 거점도시들을 서울 못지않게 발전시키면” 물리적 밀도를 낮출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규범이 강하고 획일적이면 심리적인 밀도가 낮아지지 어렵”다며, “예컨대 한국 사회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연령 규범을 좀 느슨하게 만드는 것”(191~193쪽)을 제안했다.

다윈은 “낮아진 출산율을 두고 청년들을 탓하는” 정서에 대해, 사회적으로 진화된 형질은 사회 환경이 바뀌어야 다시 바뀔 수 있다고 ‘일갈’했다. “청년들은 이미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지 확인”하라며, “한국 사회의 제도와 규범을 점검”(193쪽)할 것을 당부했다.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

◇ “구글 검색창에 ‘엄마처럼’ 써넣으면 연관어로 ‘안 살아’가 뜬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허지원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불안정 애착의 시기를 보내온 나 자신에 대한 불확실감”과 “아이에 대한 지나친 죄책감”(99쪽)이 출산을 저해하는 심리학적 요소라고 봤다.

“부모가 내게, 엄마가 아빠에게, 내가 부모에게 가져야 했을 죄책감이 사실 애착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런 경우들을 자주 만나니 한국의 가족문화는 죄책감으로 지탱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가족의 구성이란 또 다른 죄책감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만 같습니다.”(97쪽)

허 교수는 내담자들이 “엄마가 정말 불행해하면서 모든 자원을 투입해 만든 게 저예요. (…) 저는 엄마처럼 할 자신도 없는데, 그럼 제 아이는 얼마나 더 불행하겠어요?”라고 말한다며, “부모 세대가 가족 내 생활에서 편안한 행복감을 느껴왔다면 (…) 비출산 문제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107~108쪽)일 거라고 진단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의 분석도 날카롭다. 송 부사장은 “새로운 삶의 기준이 세워지는 시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해체라는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며, “삶이 바뀌는 가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며 어려움을 겪은 부모를 바라본 우리 아이들은 가정을 꾸리기를 두려워”(137쪽) 한다고 봤다.

“구글의 검색창에 ‘엄마처럼’을 써넣으면 연관어가 ‘안 살아’와 ‘살기 싫다’가 뜹니다. 엄마의 희생적 삶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 따라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이 자라난 겁니다. 그들은 바뀐 세상에 적응하며 그들이 보기에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138쪽)

송 부사장은 “저출산의 책임과 해결책을 해당 세대에게만 미룰 것이 아닙니다”라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시스템을 갖춘 배려’를 준비해야”(139쪽)한다고 강조했다.

◇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아니라 ‘국민연금이 사라지는 세상’만 걱정

그야말로 ‘융합’과 ‘통찰’이 빛나는 책이다. 일곱 명 저자들의 이야기 뒤에는 마지막으로 저자들이 모두 모여 나눈 대담 내용이 실려 있다. 각각의 저자들이 강조하고 싶은 진단과 대책이 대화 속에 잘 정리돼 있다. 바쁜 사람들은 대담 부분부터 먼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다.

아쉬운 점은 ‘저출생이 왜 위기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미 ‘저출생은 위기다’라는 인식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출생 위기에 대한 말들은 이 사회에 넘쳐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저출생이 과연 인류의 위기인지 ‘시장’의 위기인지 알고 싶어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출생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보여준 일곱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위기의 실체에 대해 짚어줬다면, 대비할 것은 더 철저히 대비하고 과장된 것은 그것대로 정확히 직면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은 저출생 문제 해결이 ‘사회구조적 시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만 이것이 독자들에게 ‘사회·구조적 접근은 소용없다’는 식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저출생 해결에 ‘10년 동안 100조 원’을 썼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도 몇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돈인가 싶기도 하다. 올해 정부 예산은 470조 원이다. 10년에 100조 원이면 1년에 10조 원. 정말 한국인이 ‘멸종위기’라면 이 돈이 많은 걸까. 사회·구조적 접근은 여전히 필요하다. 더 필요하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식보다는 내가 사실 당장 행복하게 살고, 내가 여행 가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사실 이게 덜 낳는 거다. 저는 후자가 오히려 더 많다고 본다.”(김학용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지난해 9월 10일)

‘무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 출신인 의원의 말이다. 저출생에 대한 사회·구조적 접근의 키를 쥐고 있는 자들의 수준이라. 이 책 저자들의 고민의 깊이와 견줘 생각하니 참 민망하기 짝이 없다.

저들은 정말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을 걱정하고 있기나 한 건지, 아니면 그저 ‘국민연금이 사라지는 세상’만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책장을 덮는 순간 떠오른 책 밖의 현실 때문에 기분이 복잡미묘하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