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퇴근길 서울 지하철 9호선. 콩나물시루처럼 붐비는 김포공항행 급행열차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돌배기로 보이는 아이를 안고,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엄마를 향해 나이가 지긋한 한 노인이 “아이도 좋은데, 다음부터는 여기 앉지 마라”라고 꺼낸 말이 발단이 됐다.
젊은 엄마는 “양보해드릴까요? 여기 앉으세요”라고 공손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섰는데, 그 노인은 “여기는 아이 엄마가 앉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핀잔을 줬다. 젊은 엄마는 “다른 분들이 양보해주셔서 앉았어요”라며 자리를 옮기고 있는 찰라, 젊은 엄마 곁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여기는 아이 엄마도 앉을 수 있는 자리에요”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젊은 엄마에게 질책한 노인은 “아이 엄마가 못 앉는다. 임산부만 앉을 수 있다. 당신은 끼어들지 말라”라며 큰 소리를 질렀다. 큰 목소리에 당황한 이 노인은 잠시 주춤하더니 “아이 엄마도 앉을 수 있는 자리다”라며 젊은 엄마 편을 들어줬는데, “내가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라며 더 강하게 맞받아치는 노인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더 이상 응수하지는 않았다.
교통약자석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앞서 제시한 사례와 비슷한 소동을 목격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등에 따르면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민원이 2009년 252건에서 2011년 53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교통약자에 대한 인식이 보다 확산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6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말한다. 하지만 교통약자의 범위 안에 ‘영유아를 동반한 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며 교통약자라는 용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교통약자석이라는 표기를 확산시켜야한다. 교통약자석에 대한 표기가 중구난방인데, 이 표기부터 통일해야한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모든 교통수단에 같은 표기를 쓰고, 엠블럼도 통일시켜야 한다. 교통약자석 표기와 엠블럼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 측면에서도 보완해야한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옅은 검은색 계통의 디자인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크다.
교통약자석 개수도 늘려야 한다. 교통약자석을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으나 그 실효성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몇 년 전부터 가운데 7개까지 좌석을 교통약자석으로 지정해 교통약자석의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인데, 3개짜리 좌석만이 교통약자석이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깊어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7개짜리 교통약자석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다.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아무래도 초기 임신부다.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신부는 자신이 임신부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임신부 배지가 보건소를 통해 보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양도 매우 적을뿐더러 일반인들이 임신부 배지에 대한 인식이 적어 실효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산 위험이 높은 임신 초기에 더욱 배려 받아야 하는 초기 임신부를 위한 보호체계를 만드는데 사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고령화사회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2018년 14%인 고령사회, 2025년 21%로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인구의 비중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현재 노인을 위한 별도의 배려좌석을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등 교통약자를 위한 좌석과 별도로 노인만을 위한 별도의 좌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좌석 다툼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진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텐데, 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복잡한 지하철, 서로 웃으며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수고가 있으면 될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회가 정도 메마르고 각박해져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