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부부 “왜 아이를 가졌는지 묻지 마세요”
시각장애인 부부 “왜 아이를 가졌는지 묻지 마세요”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9.1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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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엄마 시즌3 ⑤] 세 살 어씨나의 엄마 아빠 라이너-니크자드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3을 연재한다. 미국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를 찾아, 미국 장애부모들의 양육 현실과 지원 서비스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 기자 말

어씨나는 엄마 라이너 씨와 팔목에 묶은 끈으로 아이와 연결돼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어씨나와 엄마 라이너 씨는 팔목에 묶은 끈으로 연결돼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부모에게 ‘왜 아이를 가졌는지’, ‘왜 아이를 원하는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역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이너 씨)

미국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Hayward) 시에 사는 리베카 라이너(Rebecca Reiner·34세) 씨와 호자 압둘라 니크자드(Khoja Abdullah Nikzad·32세) 씨 부부는 모두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니크자드 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랍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장애인 가정이면서 동시에 다문화 가정인 셈이다.

헤이워드는 버클리(Berkeley) 시의 이웃 도시. 버클리에 있는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hrough The Looking Glass, TLG)는 세 살 난 딸 어씨나(Athena)를 키우는 이들 부부를 돕고 있다.

지난 6월 21일(현지 시간) 라이너-니크자드 씨 부부와 딸 어씨나를 헤이워드 시의 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원 가까이 왔을 때 차창 밖으로 남녀와 한 여자 아이가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성은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으로 흰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성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여성은 팔목에 묶은 끈으로 아이와 연결돼 있었다. 시각장애인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도란도란 외출하는 모습. 그들의 장애를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도 평범할 장면. 하지만 절대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 취재 일정 중 장애인 가족 인터뷰로는 두 번째였다. 이날도 TLG의 활동가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가 동행했다. 버그만 씨는 장애인 가정을 직접 방문해, 장애유형 등에 따라 각각의 가정에 최적화된 양육 장비나 가족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버그만 씨는 취재팀이 부부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어씨나를 데리고 놀아줬다. 어씨나는 이따금 엄마 아빠가 인터뷰하고 있는 테이블로 달려와서 비눗방울을 불어주기도 했다.

◇ “아이에게 무슨 색인지 말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워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들은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라이너 씨와 어씨나는 손을 끈으로 연결한 채 걷고, 니크자드 씨는 흰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버그만 씨가 더해졌다는 것.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TLG 활동가 버그만 씨(맨 왼쪽)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어씨나 가족.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 니크자드 씨의 경우 유전적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두 사람은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 아이가 같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지 많은 검사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부부에게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늘 함께했다.

한국의 경우 장애부모가 임신이나 출산을 주위에 알렸을 때, 축하보다 걱정의 말부터 듣는 경우도 많다.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았느냐’는 싸늘한 반응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라이너 씨는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전반적으로) 임신 사실을 모두 축하해줬어요.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긴 하지만 장애보다 재정적인 부분에 더 많은 염려를 했습니다. 친정엄마도 ‘장애가 있으니 아이를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어떻게 알파벳을 가르칠 것인지 등 긍정적인 고민을 더 하시더라고요.”(라이너 씨)

한국에서는 장애여성 산모를 진료해본 경험이 없는 의료진이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거리가 멀리 떨어진 대형병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동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장애여성들은 임신기 진료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심지어 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임신중절을 권유받기도 한다.

그 점은 과거의 미국 역시 마찬가지. 선천적으로 골연화증(Osteomalacia)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장애여성이면서 TLG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도나 화이트(Donna White) 씨도 과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의료진으로부터 임신중절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 아이는 장애 없이 태어났지만, 그때 겪은 일들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화이트 씨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다행히 라이너 씨 부부의 경우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의료진 역시 부부가 알아야 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를 잘 설명해줬다고 한다. 특히 임신성 당뇨로 고생했다는 라이너 씨는 “혈당조절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출산 후 라이너 씨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모유수유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안아야 하기 때문. 라이너 씨는 “(아이를 안는 것은 매번)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 “TLG의 도움 없이는 육아를 잘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라이너-니크자드 씨 부부는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라이너-니크자드 씨 부부와 한 인터뷰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아 화기애애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이들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씨나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아이에게 종을 달아서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데 이용했다. 어씨나가 걷고 나서부터는 아이가 맨 가방에 줄을 달아서 엄마 아빠가 그 줄을 잡고 뒤따라 걸었다.

“아이가 숫자, 글자, 색을 배우기 시작할 때, 아이가 이게 무슨 색인지, 무슨 글자인지 말하는데 우리는 그게 틀렸는지 맞는지 얘기해줄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플래시카드를 가지고 놀 때 ‘잘했어!’, ‘맞아!’, ‘빨간색이야!’ 이렇게 반응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죠.”(라이너 씨)

어씨나를 키우면서 제일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라이너 씨의 눈에서 살짝 물빛이 비쳤다. 니크자드 씨는 요즘 일을 쉬면서 주양육자로 ‘아빠육아’를 하고 있다. 그의 걱정은 뭘까.

“아파트 밖 놀이터나 공원에 가서 아이가 혼자 뛰어가면 끔찍해요. 저는 아이가 어디로 뛰어가는지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두렵습니다.”

니크자드 씨는 인터뷰 도중 TLG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표현했다. TLG 활동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1년 동안 이들의 가정을 방문해, 어씨나의 언어발달과 사회화에 필요한 교육을 진행했다. 이제는 아이가 컸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은 끝났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 상담만 받고 있다. TLG의 모든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된다.

“TLG 도움 없이는 육아를 잘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TLG는 우리에게 필요한 장비를 지원해주고 양육을 비롯해 감정적인 세심한 부분까지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줬어요. TLG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죠.”(니크자드 씨)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는 장애인 가정의 집안일 등을 돕는 인홈서비스(In Home Service, IHS)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단체인 TLG가 제공하는 서비스 역시 주정부가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아니오”라고 말했다. 반대한다기보다, 정부가 그런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뉴스가 2017년과 2018년 ‘바퀴 달린 엄마’ 취재를 위해 한국의 장애부모들을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한국에서는 공공의 지원과 보장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주장을 거의 듣지 못했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장애가 있어도 문화가 달라도 ‘열린 마음’이 중요해요”

TLG의 활동가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는 취재팀이 부부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어씨나를 데리고 놀아줬다. 어씨나는 이따금 테이블로 달려와 비눗방울을 불어주기도 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TLG 활동가 버그만 씨는 취재팀이 부부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어씨나를 데리고 놀아줬다. 어씨나는 이따금 테이블로 달려와 비눗방울을 불어주기도 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세 살 어씨나는 엄마 아빠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너무 마음 아픈 질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한 질문이 있다. 딱 하루만 앞을 볼 수 있다면 아이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난해 ‘바퀴 달린 엄마’ 시즌2 취재 중 만난 두 시각장애인 엄마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은 한참 고민한 끝에 ‘책 읽어주기’와 ‘달리기’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으로 미소 짓던 엄마들의 얼굴. 그 표정에서 전해진 간절한 희망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너 씨와 니크자드 씨는 웃으면서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라 말하고는,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부부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저는 어씨나를 데리고 박물관에 가고 싶어요. 다양한 박물관에 가서 이건 뭐고 저건 뭔지 직접 설명해주고 싶어요.”(니크자드 씨)

“저는 동물원에 데리고 갈 거예요. 어씨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한 가지 더 있다면 아이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제대로 보고 가르쳐주고 싶어요.”(라이너 씨)

인터뷰 내내 딸 이야기만 나오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던 니크자드 씨. 취재진이 ‘한국에는 ‘딸바보’라는 말이 있다’며 딸 자랑을 한번 해달라고 하자, 부부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라이너 씨는 “어씨나가 남편 가족이 쓰는 페르시아어와 스페인어, 영어, 수화까지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고, 니크자드 씨도 “어씨나는 뭐든지 굉장히 빨리 배워요”라며 한동안 딸 자랑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어씨나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랄까. 니크자드 씨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라이너 씨 역시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문화가 다르면 서로 이해하기 정말 힘들어요. 우리 가정도 서로 다른 두 문화권에서 왔죠. 다른 언어를 배우고 다른 행동을 배우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장애가 있든 없든 어떤 문화권의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취재진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즐거운 대화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처럼 서로 나란히 손을 잡고, 너무 평범하지만 절대 흔하지 않을 뒷모습으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라이너-니크자드 씨 부부와 딸 어씨나.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라이너-니크자드 씨 부부와 딸 어씨나.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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