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제가 오늘 생리 중이라 얼굴이 많이 부어 있어요.”
지난 4일 서울 당산동 스페이스36.5에서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오마이북)의 두 저자,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 씨와 최은경 오마이뉴스 기자가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진행자 역할을 맡은 심에스더 씨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생리여부를 밝힌 이유를 “성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거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의미 있다”라고 설명했다.
성은 누구에게나 부끄럽고 이야기하기 막막한 주제다. 아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더 그렇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두 아이를 키우는 최은경 기자의 ‘막막함’에서 출발했다.
최 기자가 생활에서 만난 성에 대해 물으면,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 씨가 자연스럽고 솔직한 단어로 풀어주는 식으로 책은 만들어졌다. 답변이 오가는 과정에서 섹스나 임신, 출산과 낙태 같은 이야기뿐 아니라, 노브라, 페미니즘, 외모 고민, 불법 촬영물, 그루밍 성범죄, 데이트 폭력 등과 같은 사회 이슈 전반을 다룬다.
◇ “성은 생활이고 관계…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용감하게”
심 씨는 청중들에게 “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과 관련한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심 씨는 “뭔가 범람하고 지나치게 열려 있는 거 같지만 소통이 필요하고 문제를 예방하고,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성의 영역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불균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용감하게’라는 정신이 성이야기를 할 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5학년 대상으로 강연을 했을 때 일이에요. 한 남자친구가 ‘저 오늘 천사가 찾아온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평소 그 친구는 자신 양쪽 고환 모양이 굉장히 달라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대요. 그날 이 고민을 털어놨는데, 여섯 명 중에 세 명이 ‘자기도 짝짝이다’라며 동의했어요. 그동안 자신의 몸은 봤지만 주변에 물어볼 수 없었던 거죠.”
심 씨는 “온갖 문제, 어딜 봐도 성은 드러나는데, 삶에 가져와서 적용한다면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맥락 등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씨는 “성은 생활이고, 성은 관계”라고 정의했다. 그도 그럴게 성 이슈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최 기자가 심 씨에게 처음 기고 청탁을 했던 것도, 둘째 아이와 드라마를 보다가였다. 아이에게 ‘성매매’나 ‘데이트 폭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 이야기를 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책을 쓰면서 알게 됐어요. 집에서도 이 글을 쓰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아이와 같이 드라마 키스신을 보면, 아이가 ‘저거는 뽀뽀가 아닌 거 같아’라며 ‘빨아먹는 거 같아서 더러워’라고 반응해요. 하지만 ‘저거는 엄마도 아빠도 많이 해봤다’고 했죠.”(최은경)
“강연에 가서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너희를 어떻게 낳았다고 했느냐’라고 물어봐요. 배꼽에서 나왔다고도 하고, 어느 날 문 앞에 있었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어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 설명만 해줘도 야동(야한 동영상) 속 섹스와 성기결합을 떠올리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곡과 편견 없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돼요.”(심에스더)
◇ “박 장관 발언, '납작한' 성인식 때문… 공감능력 있었다면 아픔부터 말했을 것”
납작해진 성은 자연스럽게 생각도 납작하게 만든다. 심 씨는 “강의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도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못한다”며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막연하게 살다보니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더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질문이 가장 재미있었느냐”는 최 기자의 질문에 심 씨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동성애를 엮은 편을 꼽았다.
“우리에게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을 더 이상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성애만 옳고 나머지는 틀리다는 결정은 누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우리’가 이성애자이고, ‘나’에게 이성애가 익숙하기 때문에 이성애만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은 아닐까요? 만약 내가 이성애자라면, 이성애가 옳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선택해서 태어났을까요?”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120쪽)
“용기 있게 질문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니까 이해도 못하게 된다”고 말한 심 씨는 “답에 도달하려고 하기보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예요.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매너와 태도가 무엇인지를 지금부터라도 세세하게 알려주면 좋겠어요.”(「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134쪽)
성에 대한 소통은 젠더 이슈가 첨예한 요즘, 더욱 중요해졌다. 두 저자는 ‘성을 두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심에스더 씨는 책을 두고 “양육자를 위해서 쓴 책인 것 같지만, 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알고 싶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심 씨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을 언급하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지난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을 두고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고 한 바 있다.
“장관의 발언은 ‘이 시대가 얼마나 성을 납작하게 보는가’를 생각하게 했어요. 아이가 어떤 고통을 당했고, 부모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아는 공감능력과 성인지 감수성이 있었다면 어떻게 위로하고 대처하고 어떤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 거예요. 처벌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은 관계고 성은 생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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