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앞에 무릎 꿇은 엄마들, 언제까지 봐야 합니까
국회의원 앞에 무릎 꿇은 엄마들, 언제까지 봐야 합니까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4.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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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엄마정치’·보육계 출신 비례대표 후보들, 당선권 밖 순번 아쉬움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 앞에 무릎 꿇은 ‘태호 엄마’ 이소현 씨(오른쪽 첫 번째) ©베이비뉴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 앞에 무릎 꿇은 ‘태호 엄마’ 이소현 씨(오른쪽 첫 번째) ©베이비뉴스

기자에게 20대 국회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 ‘엄마들’은 이채익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생명안전법안들을 통과시켜달라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의원의 옷자락을 잡았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었다. 그러고도 다시는 자기 아이처럼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없게 해달라며, 아이들 이름을 딴 법안을 허락한 엄마들이었다. 그들은 지난해 11월부터 거의 한 달간 매일같이 국회 복도에서 서서 의원들을 기다리고, 호소하고, 절망하고, 또 울었다. 그들 중에 ‘태호 엄마’ 이소현 씨가 있었다.

지난해 5월 이른바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태호. 이어 어린이통학버스 관련 제도를 강화하는 ‘태호·유찬이법’이 발의됐다. 그 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태호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태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더 많은 ‘태호들’을 위한 법이었지만, 국회는 그들을 그저 ‘민원인’ 정도로 취급했다.

이 씨가 직접 정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지난 1월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이 씨는,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됐다. 사고 이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로 활동해온 이 씨는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국회에서 ‘엄마정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정치’를 내세운 후보는 또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인 조성실 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조 후보는 정치하는엄마들 창립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을 거쳐 정치하는엄마들 초대 공동대표로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을 비롯해 ‘유치원 3법’ 통과 촉구 운동, 스쿨미투 운동 등에 앞장섰다.

또 지난 1년간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며, 태호·유찬이법을 비롯한 20대 국회 내 ‘어린이생명안전법안’ 방치 실태를 고발하고 통과를 위해 애써왔다. 조 후보는 지난 2월 정의당에 입당해, 정의당 내 보육·노동 특별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국회에는 정치하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선언하며 비례대표로 총선에 도전했다.

◇ “청년도 여성도 아닌 ‘엄마’ 정체성… 제도권 정치는 너무 큰 장벽”

각 정당의 공천이 마무리됐다. 이소현 후보의 비례대표 순번은 21번. 조성실 후보는 13번으로 결정됐다.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당선권은 17명 안팎 정도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정의당은 당초 7~8석 이상 비례대표로 당선될 거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과 같은 여권 비례대표 정당 창당의 영향으로 당선권 의석 수는 절반 정도로 줄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엄마들의 당사자 정치’가 국회 문턱을 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거대 정당들의 의석 독식을 막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등 수많은 논란을 낳으며, 내용보다 형식에 대한 논쟁만이 뜨거웠던 측면이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당시만 해도 최대 수혜자로 여겨진 정의당은, 비례대표의 약진으로 두 자릿수 의석 확보까지 기대됐다. 하지만 초기에는 비례대표 후보 영입과 경선 과정에서 당내 혼란을 피하지 못했고, 여권의 ‘위성정당’ 창당 이후에는 지지율을 상당 부분 빼앗기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혼란스러운 비례대표 제도 자체에 대한 ‘왈가왈부’가 넘치는 사이,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두 후보의 순번이 당선권에서 멀어진 것만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두 후보가 표방하고 있는 ‘엄마정치’의 가치가 사회적 논의의 주제로 부각될 기회 역시 줄어들었다는 점이 더 아쉽다.

한 활동가는 “육아 당사자의 현실과 아동인권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선전문구일 뿐”이라며, “청년도 여성도 아닌 ‘엄마’라는 정체성이 마주한 제도권 정치는 너무나 큰 장벽”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보육·교육·육아의 문제가 여성의 기본값으로 설정돼 정치적 기득권을 쥔 남성들의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점 ▲비혼 무자녀 중심의 청년 정책에서 30-40대 양육자들이 배제되는 점 ▲여성 분야에서도 양육자라는 정체성은 발언권이 터무니없이 낮은 현실 등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대한민국에 엄마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정치를 하고 있는데 우리(엄마들)만 안 합니다. 당하는 사람들만 정치를 안 해요. 정치는 남 얘기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 그 무관심의 대가가 반드시 있습니다.”(장하나 전 국회의원, 지난해 7월 17일 정치하는엄마들 열린강연)  

◇ 내홍 수습 안 되는 보육계… 비례대표 배출 기대도 ‘깜깜’

보육계 역시 착잡한 상황이다. 원내 정당들의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보육계 출신 인사는 민생당 최도자 현 의원밖에 없다. 최 의원은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 부회장, 전국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최 의원의 비례대표 후보 순번은 7번. 현재의 지지율을 볼 때 민생당은 비례대표 당선자를 한 명 내거나, 아예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 의원 역시 당선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보육계를 대표하는 한어총이 제대로 된 지도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라 아쉬움은 더욱 크다. 당초 지난 2월 새 회장을 선출할 계획이던 한어총은 후보자 등록무효 등의 잡음 끝에 선거를 진행하지 못했다. 소속 분과와 지난한 소송전을 벌이는 등, 오래된 내홍이 수습되지 못한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더욱이 2018년 김용희 회장과 20여 명의 관계자들은 과거 국회의원들에게 12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았다. 그해 11월 압수수색까지 겪은 뒤 김 회장 등은 지난해 9월 검찰에 송치됐다. 이처럼 한어총 내부조차 ‘내 코가 석 자’인 처지 때문일까. 보육계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 당선권 안에 없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다.

지난해 한 보육단체가 주관한 국회 토론회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행사 이름은 ‘토론회’지만 토론보다는 국회의원들의 ‘인사’가 더 중요했던 자리. 강당을 가득 채운 수백 명의 보육인들은 “사랑합니다 의원님!”을 연신 외쳤다.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머리 위로 ‘하트’까지 그린 장면. 흐뭇하거나, 또는 간절하거나.

보육계의 요구를 전하기 위해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넘치는 ‘애정’을 표현했던 그날 현장은 ‘웃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4년, 21대 국회 때도 그런 모습을 더 봐야 하나 싶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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