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는 어린이집과 무관하다 생각했다. 예방 차원에서 외부활동을 줄이고 행사를 연기하면 곧 상황이 정리될 줄 알았다. 그러나 대구의 한 대형 어린이집 교사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어 매일 추가 확진자가 늘면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구의 경우, 2월 19일 처음으로 어린이집 ‘일시휴원’ 명령을 시작으로 3월 말까지 모두 여섯 번의 연장 안내가 내려왔다. 지난 50여 일 동안 어린이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처음 ‘일시휴원’ 때 어린이집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을 느꼈다. 학부모들도 공감하며 긴급상황이 아니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임시휴원과 긴급보육체제로 운영되면서 교사들은 당번제로 근무하고 일시휴원 하는 곳도 많았다.
다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기인 2월에 내려진 휴원명령이라 현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졸업식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일부 일정을 조정하면서 정상운영이 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휴원이 연장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신입 아동이 입소하는 3월은 아이와 부모의 자연스런 이별, 새로운 선생님과의 만남, 어린이집 생활 적응 등 적응기간을 갖는다. 그러나 입소하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동이 생기면서 일부 어린이집은 신입아동이나 재원생이 혹여나 입소를 취소하고 퇴소할까봐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아동을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재원아동의 집으로 식재료 및 교재를 배달하기 시작했고, 마치 경쟁하듯 구성품이 매일 풍성해졌다. 급기야 한우세트까지 등장했다. 아이들이 등원하지 않는 빈 보육실에서 선생님들은 가정으로 배달 갈 선물꾸러미를 포장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고, 수업 영상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라는 지시로 갑자기 영상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 맘카페에는 어린이집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사연이 올라오면서 선물로 어린이집을 평가하고 비교하기도 했다. ‘아이도 보내지 않았는데 선물까지 받으니 감사하다’, ‘어린이집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신다’고 자랑 아닌 자랑이 올라왔다.
◇ ◇ 30% 넘어선 긴급보육 이용률… '평소대로 등원' 제보도
휴원이지만 긴급보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또 다른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긴급보육’이라고 안내했지만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고 부모가 신청하면 반드시 교사를 배치하도록 명령했기에, 신청하는 아동에 비례해 교사를 배치했다. 하루 일과를 프로그램 적용 없이 안전에 맞춰 보내다 보니 평소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보육은 이어졌다.
연령별로 반구성이 되는 원칙과는 무관하게 통합으로 이루어진 반을 돌아가며 교사들이 보육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재미가 없고 교사들은 교사대로 힘들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복지부와 교육부의 돌봄지침도 달라, 대책안이라고 나온 부분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마스크 착용이다.
집단시설인 어린이집을 통한 집담감염, 바이러스에 취약한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내린 조치가 휴원인데, 정작 어린이집에서는 마스크 확보조차 쉽지 않았다. 시나 구에서 지원하는 마스크는 일단 교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며, 추가 지원도 없는 가운데 공적마스크 판매가 시작됐다. 출근하는 교사들은 어린이집을 비우고 마스크를 사러 갈 수 없는 상황.
더구나 복지부의 지원체계 발표안에는 ‘어린이집에서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보육교직원의 개인위생(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을 준수’하라고 지침으로 내리는 바람에 ‘교사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혹여 교사들 중 확진자가 나오면 온전히 교사 개인위생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는 부담감에 어떻게든 마스크를 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휴원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복지부 휴원 연장 안내다. 가정에서는 3월 한 달간 가족돌봄휴가, 개인연차사용, 부모찬스 등을 돌려쓰며 어떻게든 버텼지만 더 이상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3월 중순부터 긴급보육 대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평소대로 아이들이 거의 다 등원하는 정상보육처럼 운영한다’는 내용의 글이 교사커뮤니티로 올라오며, 사실상 ‘긴급보육’이라는 말은 무색해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무기한 휴원 연장을 알리며 "긴급보육 이용률도 2월 27일 10.0%에서 3월 9일 17.5%, 3월 16일 23.2%, 30일 31.5%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초강력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오히려 어린이집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 교사에게 책임만 안겨준 긴급보육,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뿐
4월 초 교사커뮤니티에서 전국 어린이집 등원율을 조사해보니, 대구와 경북권을 제외하고 ‘평소대로 아이들이 등원하고 있다’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이렇게 할 거면 정상운영대로 계획안에 맞게 일과를 보내고 싶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직 어린이집에서 감염 사례가 나오지 않아 안심을 하고 보내는 것인지, 불안하지만 더 이상 가정양육이 힘들어 보내는 것인지, 어린이집은 안전한 곳이라고 믿고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교사로서 하루하루 너무 불안한 마음인데 보이는 건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답답할 지경이다.
교사로 일한 지 16년. 코로나19로 인해 처음 겪는 어린이집 긴급보육은 어린이집과 교사에게 의무와 책임만 안겨줬다. 그에 대한 지원책이나 준비된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전히 불안해서 보내지 않는 가정도 있고, 불안하지만 맡길 곳이 없어 보내는 가정도 있다. 불안하지만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교사도, 기저질환이 있는 교사도, 아이를 키우는 교사도 선택권 없이 출근하고 있는 지금, 이제라도 긴급보육의 컨트롤타워는 국가여야 한다.
모든 역할을 어린이집으로 넘겨놓고 뒷짐만 진 채 불구경 하는 복지부. 매번 교육부 발표 뒤 한참 뒤에서야 입장을 내놓는 복지부. 그리고 정작 어린이집의 상황은 원장의 재량으로 책임마저 넘겨버린 복지부다.
전국의 민간·가정어린이집에서는 아동이 등록하지 않아 수입이 줄어 운영이 어렵다며 인건비는 페이백(현금으로 되돌려 주는 것)하고, 교사에게 무급휴가를 주고, 연차사용을 강요하고, 급기야 권고사직까지 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도 보육료 결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퇴소해서 가정양육수당을 받겠다고 한다.
계속 느는 긴급보육 증가율은 무기한으로 휴원을 연장한 4월의 어린이집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긴급보육'의 ‘긴급’은 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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