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이후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항상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마련한 소소한 이벤트였다.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카드에 적어 크리스마스트리에 달아보자고 했다. 첫째 아이는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것들이 있었던지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카드에 술술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산타할아버지가 잘 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트리 맨 위에 카드를 잘 걸어두었다.
그런데 네 살 둘째 아이는 카드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적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둘째 아이는 글씨를 쓸 줄 몰라서 받고 싶은 선물을 그려보라고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아서 평소 아이가 관심을 두던 장난감의 이름을을 하나씩 말해 주었다. “헬로카봇 스톰X 변신로봇? 아니면 브레드이발소 캐릭터 인형?” 장난감을 하나씩 떠올리며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더 신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도 못 한 대답을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안 받아도 돼요.”
선물을 안 받아도 된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겠다고 밥도 골고루 잘 먹고, 누나랑 안 싸우려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선물을 안 받아도 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시는데, 스스로 그동안 착한 일을 많이 안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아이가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타일렀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시지만, 그래도 조금 잘못한 게 있는 아이들도 앞으론 잘하겠다고 말하면 선물을 주실 거야.”
그런데도, 아이는 괜찮다고. 이번 크리스마스엔 정말 선물 안 받아도 괜찮단다. 다시 한번 아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마치 내가 선물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산타할아버지가 된 것처럼 말이다.
◇ 사회적 거리 두기, 산타라고 예외없다 믿는 네 살 둘째
아이는 갖고 싶은 장난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름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랬던 아이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한 이유는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우리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거리 두기 해야 하니까 산타할아버지도 오시면 안 돼.”
아이에게도 코로나19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말은 안 했지만,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끝내려면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산타할아버지와 거리 두기를 결단할 정도로 말이다.
네 살 아이가 산타할아버지와 거리 두기를 결단할 정도인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특히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온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를 잘 설득해서 크리스마스트리 제일 높은 곳에 양말을 하나 걸어두어야겠다. 그 옆에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드릴 마스크도 하나 같이 걸어두면 좋겠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우리 둘째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좋은 선물을 받을 것 같다. 아이에게 잘 설명해야겠다. 산타할아버지가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다녀갔다고 말이다.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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