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죄목으로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히게 된 유관순. 8호실의 문을 열자 경악할 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에 스무 명 남짓한 여성들이 갇혀 있는 것. 각자 몸을 누일 공간 확보도 안 돼서 잠을 번갈아 가면서 자고,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부어서 모두 함께 방을 빙글빙글 돌면서 지낸다.
이 방에는 수원 지역에서 기생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펼친 기생 김향화,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다방 종업원이었던 이옥이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이 좁은 방에서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고, 우정을 나누며 연대한다. 일제는 이들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가둬두지만, 이들은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고 3.1 운동 이후 또 다른 항거를 준비한다.
엄마가 된 후에 영화를 봐서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두 명의 엄마 캐릭터였다. 한 명은 유관순의 어머니 이소제, 다른 한 명은 8호실의 임신부 임명애였다. 두 분 모두 실존했던 독립 운동가다.
3.1운동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유관순은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 충청남도 병천으로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이때 유관순의 부모는 유관순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고, 일제의 폭력 진압에 목숨을 잃는다. 영화에는 이소제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이렇다 할 대사도 없는 역할이지만, 딸과 함께 당당하게 시위대의 선봉에 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라면 절대 저렇게 못한다고. 나는 아마 시위하러 나가는 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딸의 방문을 잠그고 그 문 앞을 지켰을 거라고. 딸의 목숨과 사회적 정의, 둘 중에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딸의 목숨을 선택하는 비겁한 엄마였을 거라고.
영화가 끝나도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계속 마음에 남은 두 번째 엄마 캐릭터는 임명애 지사다. 그는 임신한 몸으로 파주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수감됐고, 출산을 위해 잠시 풀려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기와 같이 재수감된다. 성인 한 명도 자신의 몸과 정신을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8호실의 여성들은 임명애의 아기를 공동육아(!)한다. 또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라면 절대 저렇게 못한다고. 임신부로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기는커녕, 집구석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대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을 거라고. 1+1이 된 내 몸과 사회적 정의, 둘 중에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내 목숨을 선택하는 겁쟁이 엄마였을 거라고.
이소제가 자신의 딸을 지킨 방법은 내가 고안해낸 방법처럼 대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딸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었다. 임명애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지키는 방법은 그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일제 치하여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의 독립운동을 단순히 ‘자식을 지키기 위한 모성’의 틀에만 가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자녀들이 속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분투한 엄마이자, 한 명의 용감한 개인으로서 조선 시민이었다. 영화 '항거' 속 어머니들은 직접 '항거'에 뛰어들어 피 흘린 용기 있는 자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 ‘어머니 시민’의 피에 빚지고 있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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