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
"뭐든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7.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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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육아] '아이들을 믿는다'는 남편을 보며

참 이상했다. 남편과 나는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수업을 듣고, 나는 거실에서, 남편은 안방에 사무실을 차렸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자신만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은 지 오래다. 그 중 4학년 막내는 예외인데, 꼭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와서 물었다.

“엄마, 온라인 수업 듣는 거 너무 힘들어.”

“엄마, 아직도 2교시야, 이거 실화야?”

“엄마... 목말라, 음료수 없어?”

“엄마, 숙제 하고 있는데 날아갔어. 짜증나.”

“엄마, 애들은 여행 간다는데... 우리도 가면 안 돼?”

“엄마, 난 온라인 수업 다 들었는데... 휴대폰 하면 안 돼?”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참고로 막내는 나보다 아빠를 ‘훠얼씬’ 좋아한다. 평소에도 아빠 말이라면 뭐든 좋고, 아빠 역시 막내딸 말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왜, 남편도 나도 둘이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왜 나만 찾느냔 말이다. 왜왜왜! ‘너 내가 만만하니? 엄마가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니? 내가 하는 일은 아빠만큼 중요한 일 같지 않니? 왜 나만 그렇게 부르는데...’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고 오른다. 물론 기껏해야 5분을 채 넘기지 않는 잠깐의 방해지만,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왜 아빠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지가 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남편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나는 거실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특히 막내가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지, 혹시 딴짓을 하는 건 아닌지가 너무너무 신경이 쓰였다. 한창 유튜브와 웹툰에 빠져 있을 때라 더 그랬다. 회사에 있었다면 애가 뭘 하든 전혀 신경도 안 썼을 일을,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감시(?)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실제로 아이가 딴짓을 하고 있는 걸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내 목소리가 고울 리가 없다. 집안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된다. 그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늘 기분이 상한 상태였던 것 같다. 3월 4월... 몇 날 며칠을 아이와 전쟁을 벌이다시피 했는데, 이상했다. 왜 남편은 아무 이야기가 없을까. 아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걸까?

남편은 아이가 뭘 하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남편은 제 시간에 일을 하고 오전 미팅을 하고 보고를 하고 업무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 준비를 하고, 운동을 하고 돌아와 다시 일을 하는 아주 완벽한 루틴의 직장인 모드였다. 나는 남편보다 한 시간 먼저 일을 시작한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살핀다. 내 딴에는 긴장감을 준다고 중간 중간 잔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서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점심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근무를 하긴 하는데, 애들이 또 신경 쓰이고. 이 과정이 무한반복이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거다. 왜 일은 똑같이 하는데, 나만 애들한데 잔소리를 하는 건데!

어느 날 진지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자긴 애들이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애들이 뭘 하든 상관없는 아빠냐고. 저렇게 오래 휴대폰을 하게 둬도 되는 거냐고. 왜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하냐고.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학교에도 못 가고 온라인으로만 수업하는데 안 불안하냐고, 우리는 사교육도 안 시키는데 이렇게 저 하고 싶은 대로 뒀다가 나중에 애들이 잘 못 되면 어떡하느냐고. 나는 솔직히 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둑이 터진 듯 이어갔다. 듣고 있던 남편이 가만히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래도 난 아직까진 애들을 믿어주고 싶어. 이러다가 우리 애들이 막 잘못 되고 그럴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뭘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괜찮지 않아? 그게 게임이라고 해도... 친구들도 못 만나는데, 게임이라도 하면서 이야기 하고 놀잖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거보다는 나은 것 같아. 뭐든 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 저러다가 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달라질 수도 있고. 쟤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 저러다 큰애처럼 자기 할 일 알고 그러면 달라질 거야. 자기가 막내랑 왜 싸우는지 알겠는데, 나는 꼭 그렇게 싸울 일인지 잘 모르겠어. 우리 애들 잘 못 되지 않을 거야. 너무 불안해하지 마. 하지만 나도 막내 휴대폰 오래 하고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할게. 좀 신경 쓸게. 너무 걱정하지 마.”

조용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뭐 애를 못 믿어서 그런 줄 알아?”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아이를 못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동안 내게 보여준 모습들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그걸 애도 눈치 챈 것 같았다.

“내가 아니라는데 왜 엄마 맘대로 생각해?”

“안 봤어. 안 봤다고, 왜 내가 봤다고 그렇게 생각해?”

“게임 시간 내가 다 계산했어, 아직 2분 더 남았거든?”

아이패드 사용을 제한하자, 문자로 항의하는 막내. ⓒ최은경
아이패드 사용을 제한하자, 문자로 항의하는 막내. ⓒ최은경

상황이 이런데도 남편은 아이를 믿어주고 싶단다. 먼저 믿어 주느냐 마느냐, 나는 기로에 섰고 결정을 내렸다. 남편과의 이날 대화를 시작으로 아이와의 전쟁을 끝냈다. 남편이 믿는다는데, 내가 못 믿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를 못 믿을 이유는 열 손가락을 세고도 남았지만, 반대로 아이를 믿어줄 이유도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는 되었다. 남편이 위험한 정도라고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도 혼자 마음을 끓일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내 아이만이 아니니까. 가족이니까. 나는 혼자 열 내는 대신, 남편이 펼친 우산 속에 잠시 있어 보기로 했다. 적어도 막내 아이와의 일에서는.

5월 이후 막내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고 있다. 낮 12시 전까지 온라인 수업을 듣는 시간은 수업을 잘 들을 거라 믿으며 존중해주고 있고, 점심시간 이후부터 6시까지 뭘 하든 두고 있다. 단, 뭘 보는지 정도는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너무 오래 하는 것 같으면, 한 번씩 집이라도 한 바퀴 돌라고 말한다. 운동이라도 좀 하라면서. 오후 6시 전까지 해야 할 숙제 등도 있는데, 이것은 아이도 잘 협조하고 있다. 그렇게 오후 6시가 되면 핸드폰을 반납하는 일상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

휴대폰을 반납한 이후에는 저녁을 함께 먹고 영어 그림책 한 권은 아이가, 동화책 한 권은 내가 읽어주고 있다. “귀찮다”고 “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막상 한 챕터만 읽겠다고 시작한 동화책 읽기가 끝날 때쯤이면 "한 챕터 더 읽을까?"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 영어 그림책 한 권을 여러 날 반복해서 읽다가, 어느 날 엄마의 도움 없이도 읽게 된 날은 ‘나 좀 똑똑한 것 같다’고 의기양양 하는 모습도 좀 귀엽다. 남편 말을 속는 셈 치고 따랐을 뿐인데, 막내와의 사이가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나는 느낀다. 아이 마음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사사건건 아이 잘못을 따지고 날을 세우던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평화롭긴 하다. 남편도 그런 눈치다. 아, 그런데 이제 방학이다. 오전에는 온라인 수업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가도 괜찮을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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