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영유아를 위한 전국희망연대는 '모든 아이를 위한 평등한 출발선' 영유아정책 전환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영유아정책이 전환의 기점에 선 지금, 유보통합 3법을 비롯해 교사 처우, 장애영유아 교육권, 이음교육 등 교육 방향과 공적 지원체계 전환 등 핵심 정책 과제를 차례로 짚어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모든 아이가 출생과 가정환경, 장애 여부, 지역과 기관 유형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정책 전환을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말

최근 교육부는 국민의 문해력 향상을 국가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며 초·중등학교를 중심으로 독서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이제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유보통합 시범사업의 하나로 독서교육이 추진되면서 영유아교육 현장에서도 독서 프로그램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서교육이 유보통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이는 일단 미루고 영유아기 독서교육이 왜 부적절한가에 대하여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국가의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초등학생의 문해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유아교육이 변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문해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영유아교육은 문해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이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를 영유아교육에 앞당겨 적용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원칙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아이들은 어른처럼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유아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경험하면서 책의 의미를 이해하는 존재이다.
교육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 1896~1980)는 유아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사고를 형성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교육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는 언어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고 봤다. 교육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 역시 아이는 성인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유아는 놀이를 통해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놀이보다 독서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책은 훌륭한 교육 자료이다. 그러나 그림책은 놀이를 대신하는 교재가 아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상상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교육적 의미를 갖는다. 책은 놀이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놀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영유아교육에서 말하는 문해력은 초등학교에서 말하는 읽기 능력과 다르다. 영유아기의 문해력은 글자를 빨리 읽는 능력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의미를 공유하며, 놀이 속에서 상징을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아이가 병원놀이를 하며 처방전을 흉내 내어 쓰고, 식당놀이에서 메뉴판을 만들고, 친구와 역할놀이를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모두 중요한 문해 경험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독서 프로그램의 횟수나 그림책 읽기 시간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정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타난다. 독서교육이 국가사업이 되면 현장은 자연스럽게 실적을 요구받는다. 얼마나 많은 그림책을 읽었는지, 몇 회의 독서활동을 했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했는지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 순간, 책은 놀이의 친구가 아니라 교육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놀이가 줄어드는 것이다. 놀이시간은 여유시간이 아니다. 놀이는 유아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이다.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고, 수학적 개념을 형성하며, 과학적 탐구를 시작하고, 사회적 관계를 익히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다시 말해 문해력 역시 놀이의 결과로 성장한다.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놀이를 줄이는 것은 뿌리를 잘라 놓고 열매를 더 많이 맺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유보통합 시범사업의 방향 역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보통합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간판을 하나로 바꾸는 사업이 아니다. 영유아교육은 초등학교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도 아니다.
유보통합은 대한민국의 모든 영유아가 발달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교육체계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시범사업 역시 초등교육의 논리를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영유아교육만이 할 수 있는, 영유아를 위한 교육을 실험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교육부에서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독서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첫째, 독서교육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사업은 놀이 기반 문해환경 조성이다. 아이가 충분히 말하고, 듣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문해력의 출발점이다.
둘째는 사회정서 발달 지원이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한 읽기 능력이 아니라 공감과 협력, 자기조절과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놀이와 또래관계 속에서 길러진다.
셋째는 자연과 생태를 활용한 교육이다. 숲에서 뛰어놀고 계절을 경험하며 자연과 관계를 맺는 활동은 언어와 사고를 풍부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교육이다.
넷째는 교사의 상호작용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다. 좋은 유아교육은 프로그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놀이를 읽어내고 그 의미를 확장해 주는 교사의 전문성에서 시작된다.
다섯째는 부모교육이다. 영유아의 언어는 하루 한 시간의 프로그램보다 가정에서 부모와 나누는 수많은 대화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와 함께하는 그림책 읽기, 대화 문화, 미디어 사용 습관 개선을 지원하는 정책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문해교육이다.
우리는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독서교육을 확대하려 한다. 그러나 영유아교육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충분히 놀고 있는가.
아이들이 마음껏 질문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어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문해력은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날 것이다.
유보통합 시범사업은 학교화를 위한 통합이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하나의 행정체계로 묶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유보통합은 영유아발달에 적합한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육부가 지금 추진해야 할 것은 영유아 독서교육의 확대가 아니라 영유아의 놀이권을 보장하고, 관계와 경험을 중심으로 한 발달 친화적 교육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책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문해력은 부모와의 대화에서 자라고, 친구와의 놀이에서 자라고, 숲길을 걸으며 던지는 질문에서 자라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 속에서 자란다. 결국 문해력은 독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시작된다.
유보통합이 지향해야 할 미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는 나라가 아니라, 아이들이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영유아가 오늘 여기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영유아교육이 지켜야 할 본질이며, 국가가 만들어야 할 미래교육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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