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길어올리는 말빛과 국어사전
숲에서 길어올리는 말빛과 국어사전
  • 최종규 작가
  • 승인 2026.09.18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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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작가의 작은 배움 숲] 4. 왜 ‘숲노래 책숲’인가

전남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에 있는 옛 흥양초등학교(1998년 폐교)의 철거가 추진되면서, 이곳에서 16년째 운영돼 온 국어사전 서재도서관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특히 이곳에 보관 중인 5톤 트럭 20대 분량의 국어사전 자료와 장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흩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우리말 연구 자산의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베이비뉴스는 국어사전 서재도서관을 운영하는 최종규 작가의 글을 통해 폐교 활용의 의미와 우리말 자료 보존의 가치, 그리고 지역 문화생태계의 중요성을 짚어본다. 이번 기고는 총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말  

고흥 영남초 학생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고흥 영남초 학생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부산 책과아이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부산 책과아이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저는 이제 ‘고흥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011년부터 2026년까지 ‘고작 열여섯 해밖에’ 살지 않았지만,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은 ‘난 곳’이되 ‘삶터’이지 않고, 지난날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고 ‘이오덕 유고정리’를 하던 무렵 살던 서울은 ‘머물던 곳’이되, 이제는 서울에 마실을 가면 늘 길을 헤매고 전철도 잘못 타기 일쑤입니다. 고흥에서는 모든 마을을 환하게 꿰뚫는 오늘을 살아가기에 고흥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고흥에 깃들기 앞서 2007년부터 인천 배다리에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그때는 막 ‘이오덕 유고정리’를 끝마쳤을 무렵이요, 늘 잔뜩 짊어지고 다니던 엄청난 책더미를 어찌할까 하고 헤맸습니다. 이때에 마침 인천 배다리를 ‘왕복 16차선 산업도로 공사계획’으로 잘라내려는 인천시 행정 문제가 불거졌어요. 그래서 인천으로 책살림을 통째로 옮기면서 책마루숲을 처음 열었습니다.

이 책마루숲은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겼습니다. 혼자 일해서 버는 살림돈으로 꾸리는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이지만, 여러 이웃님이 다달이 도움돈(후원비)을 보태어 주시기에, 폐교임대료도 내고 새책도 사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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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은, 시골인 전남 고흥군에서도 읍내하고 15.2km가 떨어진 외진 작은마을에 있는 폐교를 빌려서 삼습니다. 면소재지하고도 5km쯤 떨어졌습니다. 이곳을 걸어서 찾아오거나 자전거로 찾아오기에는 안 다 멉니다. 시골은 군내버스도 드물어서 고흥군민이어도 자가운전자가 아니면 찾아오기는 안 쉽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숲노래 책숲』으로 찾아오는 분은 누구나 아무리 오랜 희귀자료여도 다 손으로 만지면서 보는 도서박물관”으로 꾸립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찾아오기 어려운 분이 많기에, 거꾸로 “찾아가는 도서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책을 싸들고서 찾아가서 이야기판(강의)과 글판(시쓰기 창작교실)과 보임판(전시회)을 열곤 합니다. 여러 전시회 가운데 “국민학교 방학숙제 식물채집장 전시회”도 곧잘 열곤 했습니다.

『숲노래 책숲』에서 벌이는 문화예술교육활동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는 ‘쪽글쓰기’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조용히 깃들면서 국어사전 집필을 하는 틈틈이, ‘찾아오는 손님’과 오래책(오랜 살림을 품은 책)을 함께 만지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작은종이에 시를 쓰는데, 이렇게 쓴 쪽글(시)을 곧장 글손질을 해서 건네드립니다. 이런 쪽글쓰기가 즐겁다고 여기는 분이 많아서, 2023년에는 ‘꿈꾸는예술터 : 씨앗노래’라는 이름으로 공모사업 프로그램을 꾸렸고, 2024년에는 ‘꿈다락문화예술학교 : 우리말로 노래밭’이라는 이름으로 공모사업 프로그램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2024년에는 여수에 있는 초등학교 세 곳 어린이하고 ‘문해력 증진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쪽글쓰기를 문득 펴는 문화예술교육활동은 언제나 ‘말밑이야기(국어어원 강의)’를 바탕으로 꾸립니다. 우리말에 깃든 속뜻과 밑뜻부터 차근차근 풀고, 우리말이 어떻게 숲(자연)에서 태어났는지 들려주고서, 이러한 숲말과 숲살림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노래(시)를 쓰기로 합니다. 이러한 쪽글쓰기와 말밑이야기는 『숲노래 책숲』에서 펴기도 하지만, 흔히 ‘찾아가는 책숲’으로 자주 폅니다.

‘찾아가는 책숲’이란, 말 그대로 저희가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전남 고흥에서라도 고흥읍내 다른 공간이나 고흥관내 여성농업인센터라든지 읍내 카페라든지 여러 공간에서 조그맣게 ‘글놀이꽃(시창작교실)’을 엽니다. 고흥을 벗어나 서울과 부산과 인천 같은 도시로 달려가서 글놀이꽃을 펴고요. 지난 2025년에는 부산에 있는 마을책집 『책과아이들』에서 ‘상주작가’까지 했습니다. 부산이웃을 마치 옆마을에서 만나듯 고흥과 부산을 넘나들면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글놀이꽃을 편 셈입니다.

부산 책과아이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부산 책과아이들과 함께한 찾아가는 이야기. ⓒ최종규
서울 두란노 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서울 두란노 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2011년부터 2026년 올해까지 열여섯 해라는 나날을 지내며 느낀 바는 ‘싸목싸목’이어야 하는구나입니다. ‘싸목싸목’은 전남 고흥 사투리로 ‘천천히·찬찬히’를 뜻합니다. 2011년에 고흥에 깃들어서 2012년 무렵에 고흥 토박이 이웃님이 이 사투리를 들려주었어요. 고흥에서는 모든 일을 싸목싸목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지난 16년 동안 해마다 고흥교육지원청이 1년 단기임대계약만 해주었어도, 싸목싸목 걸어간다는 마음으로 한 땀씩 일구면서, ‘찾아오는 손님’과 ‘찾아가는 책숲’ 두 가지 얼거리를 펼쳤습니다.

저희가 건사한 책 가운데 《우리 고장 고흥》이 있습니다. 1983년에 고흥문화원에서 낸 자료집인데, 막상 고흥문화원을 비롯해서 고흥군청도 고흥교육지원청도 이 자료집을 보관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이런 책이 1983년에 나온 줄조차 아무도 모릅니다. 《敎育實踐資料》(1923)라는 작은책도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교육칙어’를 전국 모든 곳에 퍼뜨리려고 나온 책자이고, 이 책자를 국내에서 보관하는 곳은 서울교대도서관과 저희 『숲노래 책숲』 두 곳인 줄 압니다.

이름(명함)을 얻으며 낱말지기(사전편찬자)로 일한 때는 2001년부터입니다만, 이미 1994년부터 혼자서 천천히 뚜벅뚜벅 걷듯 낱말지기로 일했습니다. 서울·인천에서 살던 2010년까지는 ‘말이 태어난 숲’까지 제대로 살피지 못 했습니다만, 전남 고흥에 깃든 2011년부터는 ‘말이 태어난 숲’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낱말책을 여밉니다. 낱말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는 꽤 오래 걸리기에 2016년에 겨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냈고, 2025년에 드디어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냈습니다. 사이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나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나 《곁말》이나 《우리말 동시 사전》이나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나 《쉬운 말이 평화》나 《우리말꽃》을 써냈습니다. 낱말책에 싣는 낱말과 얽혀서, 우리가 늘 쓰는 말에 흐르는 이야기를 단출히 풀어내는 작은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올해 2026년에는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써냈고, 지난해 2025년에는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를 써냈는데, 낱말풀이를 늘 새롭게 붙이다 보면, “낱말을 풀이하는 짧은 글은 모두 노래(시)가 되는구나” 하고 느껴서, 낱말풀이와 시쓰기를 하나로 맞물리는 길을 살피기도 합니다.

우리는 들숲메바다가 있기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나라를 세웁니다. 우리는 말이 있기에 마음을 나누고 글을 씁니다. 우리는 배움터가 있기에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이 나란히 배우고 가르치면서 새롭게 살림하는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폐교 같은 곳을 새삼스레 되살리면서 작은배움숲으로 삼으면, 시골과 서울이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함께 빛나는 노둣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정치와 행정에도 ‘푸른숲’을 헤아리는 ‘살림꽃’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군청과 교육지원청에 몸담은 분들 누구나 ‘시골빛’과 ‘작은씨앗’을 눈여겨보면서 돌보는 숨결과 손길과 마음을 틔울 수 있기를 빕니다.

문화온도 씨도씨와 함께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문화온도 씨도씨와 함께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서울책보고와 함께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서울책보고와 함께한 찾아가는 전시.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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