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영유아를 위한 전국희망연대는 '모든 아이를 위한 평등한 출발선' 영유아정책 전환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영유아정책이 전환의 기점에 선 지금, 유보통합 3법을 비롯해 교사 처우, 장애영유아 교육권, 이음교육 등 교육 방향과 공적 지원체계 전환 등 핵심 정책 과제를 차례로 짚어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모든 아이가 출생과 가정환경, 장애 여부, 지역과 기관 유형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정책 전환을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말

연일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재난 문자가 빗발치는, 말 그대로 '죽음을 부르는 날씨'입니다. 하지만 이 지독한 폭염 속에서도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집과 사립유치원 교실은 방학조차 없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초중고교와 달리 영유아 기관은 사실상 방학이 없거나 매우 짧습니다. 이 펄펄 끓는 뙤약볕 아래서도 교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린아이들의 돌봄과 교육을 오롯이 감당해 내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좁은 교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깊은 안타까움과 먹먹함이 밀려옵니다. 지쳐도 멈출 수 없고, 아파도 쉴 수 없는 교실. 이 가혹한 여름의 풍경은 우리가 지난겨울 마주해야만 했던 한 참담한 비극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선생님, 그곳에선 아프지 마세요."
지난 4월, 저는 이 한 문장을 모니터 화면에 띄워 놓고 온라인 49재를 진행했습니다. 경기 부천의 한 사립유치원 20대 교사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화면 너머로 접속한 수백 개의 얼굴들 중에는 낯선 이름도, 익숙한 이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같았습니다. 이 비극적인 죽음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일 당장 내가 마주할 수도 있는 미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추모제를 준비하며 다시 들여다본 고인의 마지막 시간은 매번 제 숨을 막히게 했습니다. 그는 B형 독감 판정을 받고도 마스크를 쓴 채 사흘간 출근했습니다. 원장에게 몸 상태를 알리며 "몸 관리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사과 문자를 보냈고, 원장은 "네"라고 단 한 마디로 답했습니다. 정작 사과해야 했던 것은 아픈 교사를 교실에 방치한 시스템이었는데, 사과는 온전히 고열에 신음하는 교사의 몫이었습니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의 하루는 숨 돌릴 틈조차 없이 흘러갑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보육, 교육을 책임지는 것은 기본이고, 산더미 같은 행정 업무와 청소, 차량 지도까지 온갖 궂은일이 교사 한 명의 어깨에 지워집니다. 점심시간조차 아이들 밥을 먹이느라 온전히 쉴 수 없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부족해 방광염을 달고 사는 것이 현장의 씁쓸한 일상입니다. 여기에 학부모의 무리한 민원이나 원장의 부당한 지시 앞에서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고된 노동과 감정 소모를 감내하면서도, 돌아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열악한 급여와 '1년짜리' 계약직이라는 파리 목숨 같은 고용 불안뿐입니다. 아파도 쉴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교사들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합니다.
1. 웃지 못한 사람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우리 사회는 이미 유치원 교사의 현실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한 개그 유튜브 채널이 그린 유치원 교사의 24시간 영상에 일반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의 현역 교사들은 웃지 못했습니다.
"울면서 봤습니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잔인합니다."
댓글 창에 쏟아진 눈물은, 그것이 웃어넘길 코미디가 아니라 자신들이 매일 목숨을 걸고 버텨내야 하는 '하루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킬링타임용 개그였던 장면이, 교사들에게는 수치심과 울분으로 다가왔습니다. 개그가 다큐멘터리보다 정확했던 이유는 과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잔혹한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2. 숫자가 증명하는 열악함
한 젊은 교사의 죽음을 단순한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한 숫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립유치원 교사 26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무려 88.8%가 아파도 병가나 연가를 쓰지 못하고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교사가 쓰러지거나 자리를 비울 때 즉시 투입 가능한 대체인력이 사실상 없다고 느끼는 응답자도 83.9%에 달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구조적 결함'입니다.
3. 아파도 쉴 수 없는 이유: 여성, 그리고 재계약의 굴레
대한민국 유치원 교원의 여성 비율은 2005년 이후 98%를 웃돌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역시 여성이 99% 이상을 차지하며, 그중 절반 가까이가 20대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임신과 출산을 앞둔 젊은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치원 교사 10명 중 9명은 육아휴직조차 써보지 못합니다.
법정 병가 60일은 그저 종이 위에 인쇄된 잉크일 뿐입니다. 고질적인 '1년 단위 재계약 구조' 속에서 병가를 쓰는 순간, 교사는 "쉽게 쉬는 교사"로 낙인찍히고 어김없이 재계약 불이익을 받습니다. 교사들이 해열제 두 알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쉬는 순간 일자리를 잃기 때문입니다.
4. 정부는 노동자의 편이라면서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비정규직에 가까운 영유아 교사들의 현실 앞에서 교육부도, 고용노동부도, 보건복지부도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원장이 교사의 임금 일부를 되돌려 받는 범죄 행위인 '페이백' 관행은 여전히 은밀하게 횡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취약한 여성 노동자 집단이 모여 있는 영유아 교실에는 국가의 보호가 단 한 자락도 닿지 않고 있습니다.
5. 고용 불안이라는 칼자루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대책들
부천 사건 이후 교육부는 부랴부랴 대체인력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병가를 쓴 교사에게 낙인을 찍는 조직문화와 편법적 임금 편취 관행을 그대로 둔다면, 교사는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할 것입니다. 정부의 대책이 차가운 '보도자료' 속 활자로만 유령처럼 떠도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6. 바우처 중심 지원체계의 근본적 한계
지금 영유아 기관의 문제는 단순히 지원금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부로 통합된 이후 영유아교육의 미래 비전이 필요하며, 그 시작은 지원체계의 변화로부터 가능합니다.
상시 돌봄이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많은 기관 중 이렇게 바우처 방식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인건비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영유아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영유아 공교육 책임 강화를 위해서는 보육료·유아학비와 교사 인건비를 분리하고, 교사 호봉별 인건비 직접 지원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유아 정책의 핵심은 아이들이 매일 만나는 교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의 보육료·유아학비 중심 지원체계는 기관 운영비와 교사 인건비가 한데 섞여 있어, 운영이 어려워질수록 교사의 임금·휴가·병가·대체인력이 가장 먼저 흔들립니다. 이로 인해 유치원 교사 사망사건이나 처우 및 기관 운영 불안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증명하는 구조적 문제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 지원은 보육료, 유아학비, 누리과정 지원, 지자체 수당, 기관 보조금 등으로 나뉘어 겉으로는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조각지원'에 가깝습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사 임금이 원아 수와 기관 운영 상황에 따라 흔들림
-경력교사 채용 기피와 신입교사 업무 과중
-병가·연가 사용의 어려움 및 대체교사 확보 곤란
-교사 소진과 이탈 증가, 아이들과의 안정적 관계 형성 약화
-영유아 교육·보육의 질 저하, 부모 만족도 저하
7. 영유아 교육 정상화를 위한 필수 과제: 교권과 처우 개선
다시 이런 비극이 없으려면, 영유아 교육 정상화의 핵심인 '어린이집과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교권 확립과 처우 개선'을 전제로 한 실질적인 구조 개혁이 즉각 실행되어야 합니다. 공립유치원 교사들도 힘들다고 아우성인 현장에서, 공립 처우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과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며 교실을 지켜내는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이 더 이상 억울하게 희생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보육료·유아학비와 교사 인건비 분리 및 호봉제 도입:사립 교사나 어린이집 교사가 1년 단위 계약직이라는 신분 불안정에 시달리는 한 제대로 된 권리는 행사할 수 없습니다. 아이 기준 지원(급식, 교육활동)과 교사 기준 지원(자격·경력·호봉 반영 인건비)을 분리해야 합니다. 유보통합 과정에서 보육교사 호봉제를 전면 도입하고,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여 처우를 국공립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해야 합니다.
둘째, 병가·연가·대체인력 지원의 법제화 및 국가 이관:병가, 연가, 휴게시간, 대체교사 인건비를 지원체계 안에 포함해야 합니다. 원장을 거치지 않고 교육청 시스템에 직접 병가를 신청하면 대체인력이 자동으로 매칭되는 비대면 공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교사가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상시 특별근로감독제' 도입과 공공성 강화:병가 사용 불이익이나 '페이백' 강요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교육청과 고용노동청이 합동 특별감독반을 구성해 불시 감독을 정례화하고, 회계 투명성 강화 및 표준근로계약 마련과 연계하여 위반 기관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8. 다시 없어야 할 죽음을 위해
개그 영상에 쏟아진 수많은 눈물도, 온라인 49재에 접속해 어깨를 들썩이던 수백 개의 얼굴들도 이 비정상적인 현실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공감이 잠깐의 추모로 끝나지 않으려면, 교사가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쉬는 당연한 상식이 '법적 권리'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갈아 넣어 유지되는 돌봄 체계는 결국 또 다른 희생을 부를 뿐입니다. 숨이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교실을 지키는 교사들이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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