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국제학교? 알고보니 영어학원
영어유치원·국제학교? 알고보니 영어학원
  • 이유주 기자
  • 승인 2015.11.20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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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으로 등록해 놓고, 홍보할 때 학교 사칭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안녕하세요. ○○○영어스쿨입니다."

 

20일 오전 기자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유아대상 영어교육기관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이렇게 자동으로 음성메시지가 나왔다. 음성 메시지가 끝난 뒤, 전화를 받은 상담실장이 다시 "○○○스쿨"이라고 소개하며 말을 걸어왔다.

 

기자가 "5살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자, 이 상담실장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월 120만 원"이라며 "우리는 북미 유치원, 초등 교과 과정을 들여와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스쿨'이라는 명칭을 쓰는 이곳은 실제로는 '학원'으로 등록돼 있는 곳이다. '학원법'을 적용받는 영어학원인 것이다. 현재 학원법뿐만 아니라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르면 학원은 반드시 '학원', '어학원'이라는 명칭을 붙여야 하며 '영어유치원'이나 '스쿨', '학교' 등의 유사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특히 유아교육법 제32조에 따르면 유치원(학교) 설립인가를 받지 않고 유치원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면 해당 시설에게 폐쇄 조치까지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학원은 홈페이지에서도 '영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통 있는 학교', '영어교육은 물론 인성 및 창의력까지 키워주는 명문 영어스쿨'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이곳을 '어학원'이 아닌, '국제학교'나 '외국 교육기관', '영어유치원'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유아를 자녀로 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 하면 첫 순위를 꼽는다는 곳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000 키즈 아카데미의 외벽에 신학기 모집을 하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학원법에 따르면 '아카데미' 뒤에 '학원'을 붙여야 한다.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유아를 자녀로 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 하면 첫 순위를 꼽는다는 곳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000 키즈 아카데미의 외벽에 신학기 모집을 하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학원법에 따르면 '아카데미' 뒤에 '학원'을 붙여야 한다.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 학원법 편법 이용하는 영어학원

 

이처럼 '학원'으로 등록해 놓고 불법으로 '프리스쿨', '국제학교', '영어유치원',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사용해 부모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어학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일 기준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영어유치원', '유아영어', '어린이 영어', '영어교육' 등의 관련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페이지에 노출되는 다수의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학원', '어학원'이라는 표현을 떼고, 영어유치원, 학교 등을 비롯해 '○○○ECC', '○○키즈클럽', '미국교육 ○○○', '○○○센터'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포털사이트에서 '영어유치원'으로 검색했을 때 나타나는 검색결과 첫 화면에는 이같이 불법명칭을 쓰고 있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이 무려 13곳이나 노출됐다.

 

이들 학원이 '학원'으로 등록한 뒤, '영어유치원'이나 '○○캠퍼스', '○○하우스' 등의 다양한 명칭을 내거는 이유는 학부모의 눈길을 끌기 쉽다는 이점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이라고 하는 것보다 다른 명칭을 쓰는 것이 홍보에 있어 더 유리하다"며 "학부모들은 '어학원'보다 '영어유치원'라고 하면 프로그램도 더 많고 좋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유치원'을 설립하는 것보다 '학원' 설립이 훨씬 쉬워, 이 같은 이점도 취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학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대지, 강사 등의 몇 가지 요소만 충족시키면 되지만, 유치원은 원장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건물 위치, 체육장 등의 더 많은 기준을 맞춰야 한다. 불법명칭을 사용하는 학원들은 '학원'으로 기관을 쉽게 설립하고, 영어유치원, 외국 교육기관 등으로 포장해 모객을 많이 하려는 꼼수를 쓰고 있는 셈이다.

 

◇ 해외 교육과정 운영하는 것도 문제

 

'국제학교' 등의 기관이 아니면서 외국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점도 문제다.

 

불법명칭을 쓰는 학원들 중에는 해외 교육과정을 수입해 운영하는 '외국계 유아대상 영어학원'도 있다. 이 학원들은 외국계 기업의 지사 개념으로 한국에 진출했거나 외국 학교와 브랜치 운영계약을 맺은 경우다. 미국, 캐나다 등 교육청의 학력 인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다수.

 

예를 들어 영어학원 '○○ House Prep'는 영국 런던에 소재를 둔 국제학교이며, 영국 유치원생들이 배우는 커리큘럼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서 가르치고 있다. 국제학교라면 명백히 국제학교 법률에 근거해 등록하고 운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관은 '학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School'이라는 단어를 쓰는 등 명칭 규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 지사이며 런던 커리큘럼을 가르친다'고 홍보하는 등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외국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관은 국제학교, 외국교육기관, 외국인학교로 구분된다. 국제학교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외국교육기관은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 외국인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 2와 유아교육법 제16조'에 근거해 학교를 설립·운영할 수 있다. 또 각각의 교육과정에 대한 근거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원들은 국제학교, 외국교육기관이 아닌 일반 '학원'으로 등록해 외국의 교육과정을 아무런 제재 없이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원은 외국교육기관처럼 외국 체류기관이나 국적 등 입학자격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고, 외국교육과정에 대한 까다로운 법률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아모집, 학원운영 등이 훨씬 수월해지게 된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철저하게 대책 마련해야"

 

이와 관련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18일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외국계 유아교육기관 및 어학원 등의 불법 실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게 실태 점검과 대책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최현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은 "'학원'이라는 명칭은 분명 사용해야 하고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위반"이라며 "이 법률을 잘 살려 교육청이 철저한 지도·감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원이 워낙 많고 실태를 점검하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점검 인력을 보강해서 학원이 학교처럼 행세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을 잘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연구원은 "해외 교육과정이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지 않고, '학원법'의 틀에 의지해 들여온다는 것도 문제다. 이들 기관이 들여오는 무분별한 외국교육과정은 우리 유아교육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연구원은 "영유아 단계에서 정부가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장치를 분명 마련해줘야 마땅하다"며 "이러한 편법 실태도 철저하게 규명하고 관련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에서는 현장 실사를 통해 이를 정기적으로 지도·감독하고 있다. 민원이 제기되고 언론에서 지적하는 부분이 있으면 해당 기관들을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학원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시정을 거듭 요구하고 있고, 앞으로도 점검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위반을 하면 학원에게 벌점을 준다. 벌점이 쌓이면 합산을 해서 교수정지 등 조치를 내린다. 지금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현행 학원법상의 틀 안에서 각 시·도교육청이 현장 지도, 점검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학원법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으면 강력한 행정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 외국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 "현재 이 단계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며 "상황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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