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삶아 먹겠다는 도깨비전화, 괜찮을까?
아이 삶아 먹겠다는 도깨비전화, 괜찮을까?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6.02.0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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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전화 앱 아동학대 논란...보육교사 벌금형

【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이놈! 말을 안 들으면 아주 뜨거운 냄비에 삶아서 잡아먹을 테다!”


전화를 받으면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휴대폰 화면에는 사나운 표정의 도깨비가 희번덕한 눈알을 굴리며 말을 이어간다. “말을 안 들으면 도깨비들을 많이 데리고 집에 찾아갈 거야!”


이는 일명 ‘도깨비전화’라고 불리는 애플리케이션이 서비스하는 내용의 일부다. 몇 차례 육아 예능을 통해 유명세를 치러 유사 서비스를 하는 앱이 여럿 나왔는데, 모두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이를 안 닦을 때, 잠을 안 잘 때, 밥을 먹지 않을 때 등등 상황별로 아이 훈육을 원하는 어른들이 사용하도록 제작됐다.


일명 '도깨비전화 애플리케이션'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내용. ⓒ도깨비전화
일명 '도깨비전화 애플리케이션'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내용. ⓒ도깨비전화


◇ 무섭게 훈육하면 말을 잘 듣는다?


“아이들이 속기 쉽습니다!”


“도깨비전화로 아이 땡깡(생떼)을 막아 보세요!”


도깨비전화의 홍보 문구는 말 잘 듣는 아이를 원하는 어른을 향하고 있다. 타이르고 어르고 혼을 내봐도 말을 안 듣는 아이 때문에 곤란을 겪어본 부모라면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유사 앱 중 다운로드 수를 가장 많이 기록 중인 앱은 무료와 유료를 포함해 20여 개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원하는 상황을 터치하면 실제로 전화가 오는 것처럼 벨소리가 울리고 화면에는 응답 혹은 거절 버튼이 뜬다. 응답 버튼을 누르면 상황에 맞춰 녹음된 멘트와 화면이 뜨는데, 그 방식이 다소 폭력적이다.

가령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뒤돌아 있던 도깨비가 ‘삶아서 잡아먹겠다’는 멘트와 함께 성난 얼굴을 보이며 겁을 주고, ‘이를 안 닦을 때’는 웃으며 과자를 먹던 아이가 ‘과자를 많이 먹었지만 귀찮으니 그냥 자겠다’는 멘트와 함께 잔뜩 썩은 치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전체 서비스는 대부분 혼낼 때를 위한 상황들로 맞춰져 있지만 ‘인사를 잘했을 때’나 ‘말을 잘 들었을 때’ 등 칭찬을 위한 상황도 한두 개씩 제공한다. 혼날 때는 처녀귀신, 마녀, 늑대인간 등이 등장하고 칭찬할 때는 요정 등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리얼함을 강조한 옵션도 있다. 정말로 전화가 온 것처럼 부모가 연기할 수 있도록 10초, 1분 등 설정해 둔 타이머대로 벨이 울리게 제작됐다.


◇ “도깨비전화 사용, 정서적 학대” 법원 벌금형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원생에게 도깨비전화를 보여 준 교사가 아동학대를 이유로 형을 받은 사건이다. 지난달 28일 춘천지법 형사 1단독 박정길 부장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은 어린이집 교사 A(47) 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보육교사 A 씨는 3살 남아 B군을 낮잠 시간에 잠들게 할 목적으로 도깨비전화를 사용했다가 B 군이 하원 후 불안감과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을 본 부모의 신고로 기소됐다. B 군의 부모는 아이가 악몽을 꾸고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여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보도 직후 온라인 뉴스 창을 비롯한 커뮤니티 등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러한 사건이 생기기 전부터 육아 카페나 블로그를 중심으로 도깨비전화의 폭력성을 경고하는 부모들이 있었던 터. 하지만 아이의 행동 개선이 정말 빠르다는 이유로 최후의 보루처럼 사용하는 부모들도 다수였다. 그러다 A 교사의 벌금형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미처 아동학대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반응과 함께 도깨비전화의 존재 자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어른인 내가 봐도 단어나 목소리가 무섭더라. 정말 어쩔 수 없이 쓰는 엄마들을 봤는데 아이들은 경기(驚氣)를 하고 엄마는 달래느라 또 애먹으니 효과도 장점도 없는 것 같더라. 이런 앱 없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온 사회가 들썩일만큼 소란한 반응이 이어지지만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은 아직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이비뉴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온 사회가 들썩일만큼 소란한 반응이 이어지지만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은 아직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이비뉴스


◇ 아이에게 주는 공포, 모두에게 해롭다


누구나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있다고 믿던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도깨비전화는 아이의 그런 순수함을 악용하고 있다. 도깨비가, 처녀귀신이, 늑대인간이 혼을 내겠다고 하면 그대로 믿고 겁에 질리는 아이의 심리를 이용한 서비스인 것이다.

어른이 도깨비전화 등의 방식으로 겁을 줬을 때 아이가 느끼는 공포감은 어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고 박동혁 허그맘아동청소년심리센터 대표원장은 말했다. 박 원장은 “아이는 실제와 거짓을 분별하는 현실 검증력이 없기 때문에 ‘잡아먹는다’고 하면 정말 그런 줄 알고 굉장한 공포를 느낀다. 공포를 자극하면 편도체가 자극돼 아이의 행동을 멈추긴 하겠지만 결국 부모나 교사, 아이에게 큰 문제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가 공포를 느끼게 되면 상황, 대상과 연합해 사고하게 된다. 처음에는 도깨비전화 자체를 무서워하다가 점점 그것을 본 장소로, 보여준 사람으로 대상이 옮겨진다. 도깨비전화에 대한 공포가 교사, 어린이집, 부모, 집으로 확장되는 것”이라며 “도깨비전화는 아이의 발달, 성격 형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엄연한 정서적 학대 도구다. 정말 꼭 사용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건지 어른답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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